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5번 출구 앞 문래동 로데오거리는 한때 ‘망한 상권’이었다. 2003년, 의류·잡화 브랜드 매장들이 모여들기 시작, 250m의 상권을 형성했지만 매출은 부진했다. 어느새 권리금은 0원으로 떨어졌고, 옷가게가 빠진 자리에 식당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 전준형(46)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가게 수준의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던 전씨는 2009년 이곳에 전재산 5000만원을 쏟아부었다. 공실이 많고 손님도 없었지만, 권리금 없이, 임대료가 싸다는 데 만족했다. 결국 종업원 월급 주기가 어려워 빚을 냈다. 그게 현실이었다.

13년 후 현재, 그는 곱창 전문점 ‘곱’, 돼지고깃집 ‘월화고기’와 ‘월화식당’ 등 식당 브랜드 3곳의 대표가 됐다. 브랜드 불문 지점 월 평균 매출은 1억5000만원, 본점이 위치한 문래동 로데오거리는 먹자골목이라 불리며 되살아났다. 주목할 만한 건, 전씨는 장사 13년 동안 직영 9개, 전수 창업 2개, 가맹 4개 등 식당 15곳에 손을 댔는데 단 한 곳도 폐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흥망(興亡)이 반복되는 요식업의 세계에서 그가 살아남은 비결을 따라가봤다.

지난달 26일, 서울 영등포구 '곱' 문래점에서 전준형 사장이 식당 대표 메뉴 '모둠구이'를 들고 있다. '모둠구이'는 대창, 막창, 염통 구이로 구성된 메뉴로, 가격은 2만5000원이다./박상훈 기자
◇누가 뭐래도 ‘음식은 재료’...근본 지켰더니 ‘대박’이 왔다

전준형씨는 음식 장사에 문외한(門外漢)이었다. 일본 아이찌대 국제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관악구에서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좋은 재료로 건강 음식을 만들면 손님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장님 가게만의 ‘특별함’은 뭔가요?

“좋은 재료를 쓴다는 것이죠. 곱창집인 ‘곱’은 당일 도축된 한우황소곱창을 쓰고, 돼지고깃집인 ‘월화고기’와 ‘월화식당’은 1등급 이상의 무항생제 한돈만 취급해요. 좋은 재료를 쓰면 맛이 있을 수밖에 없죠.(웃음)”

–좋은 재료를 쓰면 가격도 올라가지 않나요?

“그렇죠. 1+ 등급의 한돈은 일반 한돈보다 kg당 7000원씩 비싸요. 물론 비용은 더 들지만 장기적으론 이득이 더 크죠. 먹거리 장사는 정직과 신뢰가 생명인데, 좋은 재료를 쓰는 만큼 자부심도 생겨요. 자부심이 생기니까 손님한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고요.”

–곱창과 돼지고기 모두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데, 꼭 높은 등급의 재료를 써야 할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음식에 대한 눈높이도 올라가잖아요. 좋은 음식에 대한 수요는 계속 커질 거고, 그렇지 않은 식당은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재료는 마케팅 측면에서도 좋아요. ‘당일 도축한 한우황소곱창만 취급합니다’ ‘1+ 등급의 무항생제 돼지고기, 먹어 보셨나요?’ 등 메뉴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광고가 되거든요.”

–실제로 광고 효과를 누렸나요?

“첫 가게인 ‘곱’은 오픈한 지 1년쯤 됐을 때 하루 매출이 100만원 정도였어요. 매출은 나름 잘 나왔지만 재료값 때문에 남는 게 많진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치 않게 식신로드라는 맛집 방송에 출연해 매출이 3배 가까이 올랐어요. PD님한테 우리 가게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까, 한 블로거가 ‘양 많고 맛있는 한우곱창집’이라고 소개한 글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익명의 손님에게 준 만족이 방송 출연까지 이어진 거죠. 두 번째 가게 ‘월화고기’도 2015년쯤 먹거리X파일에 나왔는데, 고기 정량(定量)을 지키고, 1등급 이상의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월화고기'의 네이버 메뉴 소개글. 전준형씨의 마케팅 전략은 좋은 재료를 쓰고, 있는 그대로 홍보하는 것이다./네이버 화면 캡처
◇'무연육제’ 곱창, 직접 담근 대파김치...차별화 포인트를 늘려라

전씨는 좋은 재료를 써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무용(武勇)이 뛰어난 장수라고 전쟁을 이기는 게 아니듯, 좋은 재료를 쓴다고 맛집이 되는 건 아니다. 재료가 좋으니 기본은 됐다. 남은 건 ‘특별함’을 더하는 것이었다.

–좋은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지도 고민이 됐을 거 같아요.

“그렇습니다. 곱창은 한우곱창과 우육곱창이 있는데, 한우곱창은 고소함이 더한 대신 식감이 질겨서 연육을 해야 해요. 인공 연육제를 써봤는데 곱창의 탱글함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배, 키위 같은 과일에 야채를 섞은 천연 연육제를 자체 개발했어요. 돼지고기도 별도의 숙성실을 만들어 저온 숙성을 하고 있습니다. 연육법과 숙성법은 특허도 냈답니다.”

–개발하는데 공이 많이 들었을 거 같아요.

“만 6개월 정도. 사실 재료 만큼 반찬에도 공을 많이 들였어요. 곱창과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많잖아요. 그래서 여러 후보 중에서 고민하다 김치 중에서도 향이 강하고 매콤한 ‘대파김치’를 대표 반찬으로 정했고, 모두 매장에서 직접 만든답니다.”

–반찬을 직접 만든다고요?

“제가 운영하는 가게들은 직영 농장에서 재배한 채소를 납품 받아서 직접 반찬을 만들어요. 당연히 전부 국내산이죠. 비용은 물론 만드는 수고까지 생각하면 쉽지 않지만, 먹거리는 민감한 만큼 신경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중국산 김치를 납품 받는 식당과 국내에서 재배한 채소로 직접 반찬을 만드는 식당, 어디가 더 경쟁력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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