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탑승하는 퇴직열차. 본인 스스로 원해서 미리 타기도 하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 타기도 하고, 벼락맞듯 갑자기 강제로 타기도 한다.
<오십, 인생의 재발견>의 저자인 구자복씨는 “퇴직은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삶의 방식도 완전히 변화시킨다”면서 “인생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로 만들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유년 시절에 개인보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랐습니다. 자발적으로 회사에 헌신하고 상사에게 충성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죠. 집단공동체에서 희생하고 성장한 사람들이기에 조직에 대한 소속감과 일체감이 사라졌을 때 충격이 매우 큽니다.”
퇴직 이전이 축구 전반전이면 퇴직 이후는 후반전이다. 후반전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전반전 우세를 굳히기도 하고, 승부를 뒤집는 짜릿한 역전을 맛볼 수 있다. 후반전에 멋진 골을 터뜨리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퇴직을 앞둔 중년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전문가 의견을 들어 봤다.
▶퇴직금, 일시금이냐 vs 연금이냐
퇴직금은 제2의 인생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퇴직하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을 쓴 이동신 작가는 “회사를 그만둬도 재취업에 성공하면 생계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수입은 1차 직장과 비교해 3분의 1 이상 깎일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 “재취업 준비생들도 많기 때문에 예전보다 좋은 조건으로 새 직장을 찾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어 “목돈이 필요하지 않다면 퇴직금은 가급적 깨지 말고 지켜야 한다”면서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이렇게 연금 3총사와 함께 하면 밖에 나와도 살만하고 노년에도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중한 퇴직금은 어떻게 받아야 좋을까. 인생에서 퇴직이라는 이벤트를 여러 번 경험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55세 이후에 퇴직하는 경우, 퇴직금은 일시금 혹은 연금 중에서 수령 방식을 고를 수 있다.
“55세 이후에 받는 퇴직금은 세금만 내면 일시금 수령도 가능합니다. 퇴직금의 일부는 안 되고 전액 수령이 조건이죠. 퇴직 시점에 대출금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많은 데다 중간정산, 단기퇴직 등으로 퇴직금이 크지 않아 일시금 수령이 많은 편입니다.”(이동신 작가)
실제 통계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15일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퇴직자의 96%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갔다. 목돈을 오랜 시간에 걸쳐 연금 형태로 쪼개서 받겠다는 사람은 전체의 4%에 그쳤다. 다만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비율은 달라진다. 전체 퇴직 금액의 65.7%가 연금 형태로 받아가겠다고 했고, 일시금 수령은 34.3%에 그쳤다.
고금리 시기에 과도한 대출이 있다면, 퇴직금으로 대출금을 갚는 것이 우선이다. 은퇴 이후 현금 흐름이 끊긴 시기에 대출 상환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달 현재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최고 금리는 연 8% 돌파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출 상환이나 자녀 결혼·주택자금 마련을 위해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때, 알아둘 점이 있다.
<연금이야기2>의 저자 차경수씨는 “목돈이 필요해서 퇴직금을 월급 계좌로 받아서 찾아쓰겠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제도를 잘 몰라서 하는 잘못된 선택”이라며 “반드시 연금 계좌(연금저축 혹은 IRP)로 퇴직금을 전액 받고, 목돈이 필요하면 그때 찾아서 쓰면 된다”고 말했다.
연금 계좌는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3곳 중 1곳에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은행과 보험사 연금 계좌는 운용 상품이 제한적이고 처음에 고른 수령 방식을 중간에 바꾸기도 어렵다. 차경수씨는 “증권사 연금 계좌는 운용 상품이 다양하고 자금 운용도 자유로워 유리하다”면서 “퇴직금을 연금 계좌로 받은 다음 예금으로 운용하겠다고 하면 고금리 이자도 챙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퇴직금 1억원 중 3000만원이 필요한데, 잘 몰라서 세금 감면도 못 받고 1억원을 다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시금 수령이면 목돈 전부를 찾아야한다고 오판한 거죠.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일단 증권사 연금 계좌로 퇴직금을 받고,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금액만큼 뽑아쓰면 됩니다. 목돈 3000만원은 세금 감면(30%) 없이 찾아 쓰고, 나머지 7000만원은 절세 챙기면서 연금처럼 받으면 되는 거죠.”
김동엽 미래에셋 연금과투자센터 본부장은 “대다수 직장인들이 IRP 같은 연금 계좌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모른다”면서 “IRP 계좌 내에서 고금리 예금에 가입할 수도 있고, 펀드나 리츠,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다양한 상품 매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IRP는 1사1계좌가 가능하므로, 현역시절에 A증권사에서 IRP로 돈을 쌓아와서 퇴직금과 섞이는 게 싫다면 B증권사에 새로 계좌를 열고 돈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지만, 뒤늦게 연금 수령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을까. 김동엽 본부장은 “퇴직급여를 수령한 이후 60일 이내라면 연금 계좌로 이체할 수 있다”면서 “퇴직급여를 수령할 때 납부한 퇴직소득세도 환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퇴직급여 중 일부는 사용한 뒤에 나머지 금액만 연금계좌에 이체할 수도 있다. 물론 이때 퇴직소득세도 이체 비율에 맞춰서 환급받는다.
✔일본 직장인들은 어떻게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을지, 연금으로 받을지는 한국과 비슷한 퇴직금 제도가 있는 일본에서도 흔히 오가는 질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과 달리 따져야 할 변수가 하나 더 있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나눠 받으면 ‘소득’으로 잡혀서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하고, 병원비 자기부담비율도 높아지게 된다.
아직 한국은 사적연금 수령액이 건보료 부과 대상이 아니다. 지난 7월 감사원이 건강보험 재정 악화 요인으로 사적연금을 지적(사적연금과 건보료에 대해 궁금하면 조선닷컴에서 여기를 클릭)하면서 보건복지부가 제도 변경을 검토한다고 밝혔지만, 시행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만약 사적연금 수령액이 일본처럼 건보료 부과 대상으로 잡힌다면, 개인별 노후 소득에 따라 퇴직금 수령법 유불리도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