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 경쟁력 없는 기업들까지 다 구제했잖아요. 속이 곪은 좀비기업들은 도려내야 (시장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데, 총선(2024년 4월)이 있어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시장에 불확실한 변수가 너무 많아요. 내년엔 그냥 채권이나 사팔(사고 팔고) 하려구요. 헐값이 된 우량 채권들이 많아서 옥석을 골라 투자하면 고수익이 기대됩니다.” (여의도 운용사 대표 A씨)
글로벌 경제 상황이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 빠진 가운데, 주식 매매가 주특기였던 큰손들이 매의 눈으로 채권에서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금리 상승에도 원리금을 잘 갚을 탄탄한 회사의 채권을 사냥해 수익을 낚겠다는 전략이다.
돈의 흐름에 밝은 개인들의 채권 투자도 증가 추세다.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장외 채권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18조원 어치 채권을 순매수했다. 작년 순매수 금액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채권을 투자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금리가 고점 근처일 때다. 시중 금리 상승으로 채권의 표면 금리 자체가 높아진 데다 향후 금리 하락기에는 차익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경기 침체(리세션)가 현실화되어 금리가 내리면 채권 가격은 오르게 되고, 이때 보유 채권을 팔면 수익이 난다. 이명열 한화생명 T&D팀 투자전문가의 조언을 토대로 상황별 채권투자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채권은 발행 시점에 만기, 표면금리, 이자지급 주기 등 조건이 다 정해져서 나온다. 액면가는 1만원인데, 중간에 얼마에 매수했든 만기에는 액면가로 돌려받게 된다. 즉 싸게 살수록 이득인 셈이다.
아래 표에서 호텔롯데 채권을 살펴 보자. 이 채권은 2021년 1월 28일 발행된 5년짜리 장기채다. 연 1.891% 이율로 3개월에 한 번 이자를 지급한다.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단가는 8848원. 최근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채권값이 많이 하락했다.
호텔롯데 채권을 지금 8848원에 사서 2026년 만기까지 보유하면, 이자 소득(표면금리)과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고, 이를 계산하면 최종 매매 수익률은 연 5.53%다. 액면가 이하 가격으로 싸게 사도 발행회사가 부도만 안 나면 만기에 약속된 이자를 받고 원금은 액면가(1만원)로 상환받을 수 있다.
이번엔 지난 9월 발행된 한전채를 살펴 보자. 한국전력은 신용등급 AAA인 대한민국 최고의 공기업이다. 이 채권은 만기가 3년이고, 고금리 시절에 발행되어서 표면금리는 4.75%다. 저금리 시절인 2021년 1월에 발행되어서 표면금리가 1%대로 낮은 호텔롯데 채권과 대비된다.
9810원에 매수했을 때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전채 매매수익률은 5.73%이며, 이 숫자가 만기까지 보유할 때의 연간 투자수익률이라고 보면 된다.
이명열 한화생명 투자전문가는 “금리 고점에서 발행되어 표면 금리가 높은 채권은 향후 시중 금리가 떨어져도 만기 때까지 비교적 높은 이자를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서 “회사가 만기 때까지 파산하지 않아야 약속된 이자와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만큼, 신용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채권을 만기까지 보유하겠다면 표면금리가 높은 채권을 매수해서 따박따박 이자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채권을 중도에 파는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은 글로벌 인플레이션 문제가 심각해 금리 인상 트렌드가 당장 멈추긴 어렵겠지만, 내년부터는 서서히 그런 우려가 줄어들 것이다. 금리가 하락해서 채권 가격이 크게 올랐을 때가 바로 채권 매도 타이밍이다. 그런데 그렇게 매도한다면, 얼마나 수익을 챙길 수 있을까.
만기가 3년, 10년으로 다른 2개의 채권(A와 B)을 예로 들어 보자. 두 채권은 표면금리는 5%, 이자지급시기3개월 등 조건은 비슷한데 만기만 3년, 10년으로 다르다.
10년 만기인 B채권을 8595원에 사면 만기 때까지의 예상 매매수익률은 연 7%다. 그런데 만기 전이라도 시장 금리가 급격하게 하락해서 매매수익률이 1%로 떨어지면(채권가격 상승) 1만3788원에 팔 수 있고, 결론적으로 5193원의 차익을 손에 쥘 수 있다. 주식도 아닌 채권 투자인데, 수익률은 60%다.
더구나 개별 채권을 매수한 뒤에 중간에 팔아서 나온 시세차익은 비과세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금융소득종합과세에 해당하는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저금리 시기에 발행된 1%대 낮은 금리의 채권을 사서 매도해 절세하는 전략이다. 단 2023년에 금융투자소득세 제도가 도입되면(2년 유예 추진중), 채권 시세차익도 과세 대상(22~27.5%)이 되므로 유의해야 한다.
◇연 6%대 한전채, 하루 만에 동나
삼성증권은 개인들이 증권사 어플에서 1000원부터 살 수 있도록 채권 매매 시스템을 개선했는데, 올초부터 9월 말까지 개인들에게 6조원 어치 채권을 팔았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요즘 인기가 높은 채권은 신용등급이 높으면서 고금리인 한전채와 금융채라고 한다. 지난 18일 내놓은 4년3개월 만기의 한전채는 은행 환산수익률이 6.13%(세전)인데, 하루 만에 물량이 동났다.
연 6%대 한전채에 1000만원을 투자한 회사원 이모씨는 “레고랜드나 흥국생명의 상환 유예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렸는데, 한전채 같은 대어가 채무불이행 기미를 보이면 대한민국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한전채 이자로 전기요금 내면 되고, 온국민이 촛불 켜고 사는 사태가 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18일에 나오자마자 당일 매진된 한전채를 1000만원 어치 매수해 다음 이자지급일인 2023년 2월 25일(이자지급일)에 매도한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 그때까지의 이자소득은 표면금리 기준으로 세후 8만원이다. 기간이 짧으니 그렇게 많진 않다.
그런데 시세 차익은 어떻게 될까. 채권은 금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품이라서 단 0.5%포인트 차이에도 수익률이 요동친다.
한전채의 매매 금리가 0.5%포인트 하락했을 때(채권가격 상승) 보유 채권(1000만원)을 팔면 약 24만2000원이 남는다. 은행 환산 수익률로 따지면 연 14%(세전)에 달한다. 매매 금리가 1%포인트 하락했을 때 팔면 매매 차익은 약 43만9000원이고, 은행 환산 수익률로 따지면 연 23%(세전)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