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일흔이 되지만 지금까지 수술받은 적도 없고 건강해요. 그런데 예전에 가입한 실손보험이 내년에 많이 오른다고 연락왔어요. 지금도 27만원이나 내서 부담인데, 30만원이 넘을 것 같다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70대 여성 A씨)
“가뜩이나 대출 이자 올라서 먹고 살기 빠듯한데, 내년 실손보험료가 13만원으로 처음 가입할 때의 따블이 됐어요. 병원 자주 간 사람들한테만 가격을 올려야지, 이제 와서 깰 수도 없고 정말 억울하네요.”(직장인 B씨)
고물가 시대에 실손의료보험료 인상으로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우리나라 국민 3900만명이 가입한 ‘국민보험’이다. 병원에서 내가 낸 치료비를 일부분, 최대치로는 100% 보상해준다. 노후 대비를 위한 가입 1순위 상품이지만, 비용이 매년 줄기차게 오른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다.
실손보험은 내년에 평균 6~14% 오를 예정이다. 인상률은 실손보험 가입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부담금이 없고 대부분의 의료비를 보장하는 1세대 실손보험은 평균 6% 오른다. 2세대 실손보험은 9%, 2017년 처음 나와 2021년 6월까지 팔린 3세대 실손보험은 평균 14% 인상된다. 지난 2021년 7월 처음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은 동결이다.
개인별 인상률은 나이, 성별, 갱신주기 등에 따라 또 달라진다. 가령 1세대 실손보험의 평균 인상률은 6%이지만, 갱신주기가 5년인 고연령 가입자는 연령 할증에 5년치 인상분이 한꺼번에 적용되어서 보험료가 50% 넘게 오를 수도 있다.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인 50대 회사원 최모씨는 “처음 가입할 땐 부부 합산 월 6만원 정도 냈는데, 내년에 18만원까지 오른다고 한다”면서 “지금까지 추이를 보면 앞으로도 보험료가 계속 오를 텐데, 막상 혜택을 볼 나이에 보험료가 너무 비싸져서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씨의 걱정이 괜한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 위험은 높아지기 때문에 실손보험료는 점점 비싸질 수 밖에 없다. 보험연구원이 공개한 40대 남성의 실손보험료 예상 시나리오<위 그래프>를 보면, 40대에 월 3만원대였던 실손보험료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올라 70대엔 월 70만원에 육박한다.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는 “2009년 이전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 중에는 갱신 보험료가 1000% 오른 사례도 있다”면서 “1~3세대 실손보험은 지금 당장은 버틸 수 있어도 갱신 때마다 보험료가 계속 올라 나중엔 기존 보험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박사는 “작년 말 기준 의료 보장이 가장 필요한 70대의 실손보험 가입률은 14%대로 젊은 세대(80% 안팎)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편”이라며 “노년기에는 경제적 여력이 크지 않은데, 부담스러운 보험료가 의료비 보장 공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어느새 ‘짐’처럼 느껴지는 실손보험, 어떻게 해야 저렴한 비용으로 알차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첫 번째 팁은 단체 실손보험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년부터 단체 실손보험과 관련해 제도가 개선되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크게 유리해졌다. 만약 개인 실손보험과 회사 실손보험에 중복해서 가입 중인 직장인이라면, 둘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해 중지시키면 된다. 단체 실손을 중지하면 보험료 환급분은 개인이 직접 수령할 수도 있다. 단 단체 실손 중지 여부는 회사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단체 실손 혜택을 받기 위해 개인 실손을 일시 중지했다가 퇴사 후에 되살리는 경우에는 ‘재개 시점에 판매되는 새 상품’과 ‘예전에 본인이 가입했던 종전 상품’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재개 신청은 퇴사 후 반드시 1개월 이내에 해야 하며, 한 달이 지나면 별도의 가입 심사를 거쳐야 한다.
두 번째는 보험료가 저렴한 4세대 실손보험으로 환승하는 것이다. 4세대 실손은 1~3세대 실손보험에 비해 보험료는 저렴한 대신, 자기부담금(비급여)이 30%로 높고 보장 범위도 좁은 편이다.
하지만 자동차 보험처럼 실손보험료가 개인별로 차등화된다. 도수치료, MRI 같은 비급여 보험금을 많이 타간 사람은 보험료가 최대 300% 오르지만, 병원에 거의 가지 않아 보험금을 안 타간 사람은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또 1~2세대 실손보험 중에는 만기가 80세인 경우가 많은데, 4세대 실손은 만기가 100세다.
물론 4세대 실손 환승이 누구에게나 유리한 건 아니다. 지병이 있거나 병원을 자주 찾는 사람은 1~3세대 실손보험 유지가 답이다. 1~3세대는 자기부담금이 없거나 적은데, 보장 폭은 훨씬 넓기 때문이다. 5060 예비 은퇴자는 앞으로 병원 치료를 받을 확률이 높으니 환승 전에 잘 따져봐야 한다.
보험업계가 만든 ‘보험다모아’ 사이트(e-insmarket.or.kr)에서 4세대 실손 환승 유불리를 계산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사이트 접속 후 ‘실손의료보험’ 아이콘을 누른 뒤, ‘실손의료보험 계약전환 간편계산기’를 활용하면 된다. 회원가입 없이 현재 보험료와 본인 의료비만 입력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1~3세대 실손보험료 부담을 견딜 수 있다고 해도 퇴직 후 월급이 사라지면 한계 상황이 닥친다. 이때 기존 실손을 해지하지 말고, 그 시점에 판매되고 있는 새 상품으로 갈아타면 된다. 지금은 4세대 실손이지만 나이가 든 시점에 6세대 보험이 팔리고 있다면 그걸로 갈아타면 된다.
마지막으로 알아둘 점은 보험금 청구와 관련된 것이다.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는 3년 이내에 해야 한다. 3년이 지나면 보험금 청구권이 소멸된다.
일부 소비자들 중엔 혹시 내 보험료가 인상될 지도 모른다면서 치료를 받고도 보험금 청구를 안 하기도 한다. 하지만 1~3세대 실손 가입자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보험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내 보험료가 오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입한 보험사의 동일 연령, 동일 성별의 실손보험 가입자들 전체가 1년 동안 얼마나 보험금을 타갔느냐에 따라 보험료가 결정된다.
이처럼 1~3세대 실손보험은 가입자 전체가 연대책임을 진다. 그래서 ‘1년에 병원 한 번 간 사람하고 300번 간 사람하고 보험료가 어떻게 똑같이 오르냐’는 소비자 불만도 나오는 것이다.
‘반값 보험료 만들기 프로젝트’의 장명훈 작가는 “건강해서 병원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4세대 실손으로 빠져나가면, 1~3세대 실손에는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만 남게 된다”면서 “1~3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좋아질 리 없고, 갱신 보험료는 더 오르는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