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나가서 돈을 버는데 차떼고 포떼니 항상 빠듯해요. 왜 이렇게 돈이 안 모일까요?”
고물가 시대, ‘소득 착시’가 일으키는 ‘맞벌이 함정’에 고민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다. 더 잘 살자고 시작한 맞벌이인데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은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쪼들리게만 느끼는 것이다. 한쪽 배우자가 일을 그만두고 나면 닥칠 소득 절벽 위기도 그저 두렵기만 하다.
과연 우리집 가정 경제는 순항하고 있는 것일까?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와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맞벌이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생존 공식을 알아봤다. 만약 부부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살펴본 우리집 재무 상황이 합격권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개선해야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다.
1️⃣“애들 학원비 내려고 맞벌이”
맞벌이 582만쌍 시대. 지난 2021년 기준 맞벌이 신혼부부 비중은 55%를 찍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맞벌이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둘이 버는 만큼, 맞벌이 소득은 외벌이보다 많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2분기(4~6월) 기준 맞벌이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은 761만원으로, 외벌이(월 483만원)보다 월 278만원 더 많았다. 남녀간 임금 차별이 줄어들고, 남성 못잖게 고액 연봉을 받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맞벌이와 외벌이 가정의 소득 격차는 매년 높아지고 있다<그래픽 참고>.
씀씀이를 봐도 맞벌이와 외벌이 차이는 상당히 큰 편이다. 우선 작년 2분기 기준 맞벌이 가구의 월 평균 가계지출(소비지출+비소비지출)은 월 510만원으로, 외벌이(월 375만원)에 비해 135만원을 더 썼다.
맞벌이와 외벌이가 지갑을 여는 곳은 달랐다. 외벌이 가정은 알뜰하게 집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식료품 소비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맞벌이는 음식·숙박 소비가 단연 최고였다.
한세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맞벌이 가정의 월 지출 금액은 음식·숙박 부문이 약 58만원으로 가장 많았는데, 아무래도 식사 준비시간이 부족하니까 외식이나 배달을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고, 보상 심리 때문에 짬날 때마다 여행을 즐기는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맞벌이와 외벌이의 소비 격차가 가장 큰 항목은 교육비였다. 통계만 보면 ‘아이 학원비 내려고 엄마가 회사에 다닌다’라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한세연 수석연구원은 “맞벌이 가정은 교육비로 월 35만원 가량 지출했는데 이는 외벌이 교육비(월 19만원)의 1.8배에 달한다”면서 “자녀를 돌볼 시간이 부족한 맞벌이는 육아도우미를 고용하거나 학원 등 사교육에 의지해야 해서 교육비 지출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2️⃣맞벌이 합격컷, 연 3000만원 흑자
맞벌이 경제 효과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1+1=2’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맞벌이 공식이 허무하게도 ‘1+1=1’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김경필 경제 칼럼니스트는 “맞벌이를 한다는 이유로 부부가 마음 편하게 과잉소비, 모방소비를 이어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삶의 질을 높이는 소비나 노후 준비를 위한 저축을 해야하는데, 맞벌이는 품위유지비나 교육비 같은 고정비에 쓰기 때문에 결국 가처분소득은 제자리걸음만 한다”고 말했다.
맞벌이가 외벌이에 비해 돈을 쓸 때 ‘절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외벌이 가장은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면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매시간 긴장하고, 위기에 대비한 저축도 늘린다. 하지만 맞벌이는 어느 한쪽이 실직해도 남은 한쪽이 벌겠지 하면서 안심하고 긴장감 없이 느슨하게 지출하는 경향이 있다.
구조적으로 씀씀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맞벌이의 재정난을 부채질한다. 40대 회사원인 이모씨는 “부모님 생신 잔치를 하는데 우리가 맞벌이라서 돈을 더 많이 버니까 다른 형제보다 비용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둘이 버니까 돈을 더 내라는 무언의 압박이 많아서, 경조사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 지출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맞벌이 부부는 가계부에 얼마나 남겨야 남는 장사일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작년 2분기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맞벌이와 외벌이 가정의 재무 상황을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맞벌이의 월 평균 흑자액은 251만원(연 3012만원)이었고, 처분가능소득(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금액)에서 흑자액이 차지하는 비율인 흑자율은 40.7%였다.
한세연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맞벌이의 평균 저축 여력은 월 251만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서 “소득이 적은 맞벌이라면 251만원이라는 숫자보다는 흑자율 공식으로 따져봐도 좋다”고 말했다. 가령 맞벌이의 가처분소득이 월 500만원이라면, 흑자율 40.7%을 곱해 최소 204만원은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외벌이 가정의 월 평균 흑자액은 107만원이었고, 흑자율은 27%였다. 만약 맞벌이 부부의 가정경제 흑자율이 27%(외벌이 흑자율)에도 못 미친다면, 애써 둘이 나가서 함들게 일하는 ‘맞벌이 경제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3️⃣반쪽 맞벌이 생활은 반드시 청산
1년 흑자액이 3000만원에 못 미치는 맞벌이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액션플랜을 추천한다.
첫 번째는 통장 합치기. 한세연 수석연구원은 “월급이 들어오면 부부 돈이 잠시 머무를 파킹통장에 합친 다음, 저축과 소비, 비상자금 등 용도에 맞게 나눠서 송금하라”면서 “부부의 급여를 한 곳에 모으고 다시 목적에 맞게 나누는 것이 맞벌이 자산 관리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통장을 하나로 합쳐야 부부가 경제 공동체가 되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자산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는 지출 통제. 경제적 자유를 이룰 때까지 한 사람의 급여는 전부 저축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결혼 전 소비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누리면, 결국은 외벌이 부부와 별 차이 없는 가계가 되어버린다. 신혼 초기부터 자녀가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15년 동안은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어 종자돈을 모으기 좋은 골든타임이다. 외식이나 여행 등 불필요한 지출을 통제하면 저축율 50%도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마지막은 노후 준비. 맞벌이는 평소에 지출 성향이 높기 때문에 월급이 끊기는 노년기에 위기가 닥친다. 이미 한 번 높아진 소비 수준을 낮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득이 넉넉하게 있어서 여유가 있을 때 노후 준비에 더 힘써야 한다. 저축액의 30%는 연금에 넣는 식으로 준비하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