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로 시작한 중고나라, 판교 개발자들이 세운 당근마켓과 번개장터, 압구정동 명품 중고샵으로 출발한 ‘구구스’ 등 중고 전문 마켓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국내 중고 거래 시장은 지난해 24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막 상표 택을 떼어낸 청바지부터 아버지가 차던 명품 시계까지,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없는 게 없다.

특히 옷, 가방, 신발 같은 패션 아이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전세계 중고 패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42조로 추정된다.

연간 2조5000억원의 중고 물품이 사고 팔리는 중고 플랫폼 ‘번개장터’의 경우, 지난해 패션 물품 거래액이 9768억원, 전체 거래액에 44%를 차지했다. 2019년 4692억원의 두배가 됐다. 거래 건수도 같은 기간 651만5000건에서 1011만3000건으로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해를 거듭할 수록 규모가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번개장터 제공

번개장터가 27일 발표한 ‘미래 중고 패션 트랜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번개장터 플랫폼을 통한 거래 평균 단가는 10만7000원, 이용자의 78%가 MZ세대, X세대가 18%, 베이비붐세대가 4%였다.

🔸중고 명품도 MZ세대가 휩쓸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MZ세대와 그 이하의) 젊은 세대가 전 세계 고급 패션브랜드 매출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MZ세대의 명품 소비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MZ세대는 왜 이렇게 명품에 열광할까? 명품은 왜 이렇게 자주 사고 팔까.

답은 명품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다는 데 있다. 이들에게 명품은 ‘대를 이어쓰는 좋은 물건’이 아니다. 명품은 뽐내면서 쓰다가 원할 때 팔면 다시 현금으로 만들 수 있는, 그것도 ‘감가상각’이 적은 합리적인 소비 아이템이다.

번개장터 홈페이지

번개장터 중고 명품 거래 이용자의 76%가 MZ세대였는데, 이들 중 50% 이상이 ‘구입 1년 이내 명품’을 되팔았다. 다른 세대와 비교하면 사고 파는 양이 2배에 달한다. ‘명품은 대를 물려 자식에게 준다’는 이전 세대와는 입장이 다른 게 확연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업계관계자들은 “200만원 짜리 중고 가방을 100만원에 사서, 관리만 잘하면 6개월 뒤에 똑같이 100만원에 팔 수 있다”고 한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29)씨는 “저가 브랜드는 헐값이 아닌 이상 굳이 중고로 살 필요가 없지만 명품은 중고 시장에서 오히려 메리트가 있다”면서 “10만원짜리를 쓰다가 버리는 것보다 100만원 중고 명품을 사서 되파는 게 돈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했다.

명품 선호도를 보면, 남자는 시계 오메가, 가방과 액세서리 루이비통이었고, 여자는 시계 까르띠에, 가방 루이비통, 액세서리 샤넬 등이었다.

🔸중고도 명분 있으면 더 뜬다?

업사이클링의 대표 브랜드 ✔프라이탁, 친환경으로 유명한 ✔파타고니아, ✔베자 같은 ‘명분 상품’의 거래도 늘었다. 세 브랜드의 거래량은 3년 전보다 101%, 거래금액도 205%가 증가했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디자인과 품질보다 메시지가 있는 브랜드, 스토리가 있는 제품을 선호하는 젊은층의 비중이 확실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중고시장에서 유니클로, 자라 같은 SPA, 패스트패션보다는 ✔폴로, ✔타미힐피거 등 전통이 있는 ‘헤리티지 패션’이 더 인기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헤리티지 패션은 패스트패션 대비 거래 건수는 1.7배, 거래액은 3.1배 많았다. 가격이 합리적인 유니클로를 굳이 ‘중고’로 살 필요 없다는 점도 오프라인 인기에 비해 중고 거래 인기가 떨어지는 원인으로 보인다.

해진 옷을 수선해서 입을 경우 고객에게 'worn wear' 마크를 달아주는 파타고니아. 고가임에도 인기가 높다. /파타고니아

🔸남이 신던 운동화가 거래량 1위, 왜?

번개장터에서는 1년 동안 1000만 건 넘는 거래가 이뤄졌다. 사람들은 어떤 브랜드, 어떤 상품을 사고 팔았을까.

지난해 한해 번개장터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TOP5 중고 품목은 ✅스니커즈 ✅여성 가방 ✅여성 원피스 ✅남성 자켓 ✅남성 티셔츠 순이었다. 번개장터 김유림 매니저는 “스니커즈가 1위를 차지한 이유를 분석해보니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한정판이 유독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정모(28)씨는 “인기 스니커즈의 단종 모델은 중고 말고는 구할 방법이 없다”며 “중고가가 판매가보다 1.5~2배 되는 모델도 많다”고 했다.

한 지하철에서 촬영된 사진. 최근 몇년 사이 크게 유행한 '나이키 범고래' 모델을 신고 있는 모습니다. /온라인커뮤니티
[돈그랑땡]은 ‘잘쓰기’, ‘잘모으기’, ‘잘굴리기’ 비법을 찾아갑니다. 호구성 소비, 짠내만 나는 절약, 무모한 투자는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