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쓰던 것’ ‘찝찝한 것’ ‘낡은 것’...중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달라지고 있다. 중고 거래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등장한 2030 세대는 “정가 주고 사기 부담스러운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한정판처럼 구할 수 없는 제품도 가질 수 있다” “쓰다가 싫증나면 다시 팔 수 있다”고 말한다.

[돈그랑땡]이 2030 중고 거래 선수들을 만나봤다. 그들은 “중고 가격이 제품의 진짜 가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합리적 소비라고들 한다. 하지만 모든 중고 거래가 그런 건 아니다. 중고 시장의 가격은 주관적이고, 시세는 유동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 파는 기술이 중요하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현대백화점 '더현대'에 있는 번개장터의 한정판 스니커즈 매장 '브그즈트랩'. 이 매장에는 평소 구경하기 힘든 한정판 스니커즈들이 많이 전시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다./번개장터

WHY

✅대학생 김혜인(가명·24)씨

중고 거래 경력 10년차인 혜인씨. 중학교 1학년 때 중고나라에서 펜, 메모지 같은 학용품을 사면서 중고거래 재미에 빠졌다. 요즘은 횟수가 더 늘어 한 달 평균 3~4번씩 옷, 신발 등을 사고 판다. 월 30만원어치 정도. 김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고로 채웠다”고 했다.

–중고 거래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주로 시중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을 사요. 요즘 유행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중에선 재발매를 안 하는 곳들이 많거든요. 모르는 사람들은 판매가보다 비싸게 산다고 손해라고 하지만, 인기 제품은 되팔 때도 가격 방어가 돼요. 딱 내가 쓴 만큼만 감가가 돼서 나름 합리적인 셈이죠.”

–명품도 중고로 산 적이 있나요?

“네. 1년 전에 200만원 넘는 발렌시아가 가방을 130만원에 샀어요. 관리 상태가 좋아서 친구들이 중고인지 모를 정도였어요. 제 입장에선 새제품을 70만원 할인 받으면서 산 거랑 다름 없었죠.”

–대학생한테 130만원짜리 가방은 과한 것 아닌가요?

“물론 큰 금액이죠. 하지만 살 때부터 중고로 되팔 걸 고려해서 부담이 적었어요. 1년 정도 쓰고 되팔아도 관리만 잘한다면 10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거든요. 중고로 사서 쓰고 중고로 팔아서 손실을 줄인다. 이게 제 전략이에요. 누구는 과소비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오히려 명품 백의 가격 방어를 이용한 전략적 소비라고 생각해요.”

샤넬 오픈런 현장. 중고 시장에서는 인기 브랜드, 모델일 수록 프리미엄이 붙는다. 인기 백의 리셀가가 판매가보다 비싼 이유도 오픈런을 해야 될 정도로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인업

✅백화점 직원 안정훈(가명·28)씨

정훈씨는 옷을 ‘거의’ 꽁짜로 입는다. 많이 살 때는 한 달에 100만원어치를 사기도 한다. 물론 팔 때도 비슷한 가격으로 판다. 오히려 중고 시세가 올라, 웃돈을 받을 때도 있다. 정훈씨는 “중고 가격이 진짜 가격”이라고 말한다. 새 제품, 브랜드 이름값 때문에 붙은 프리미엄은 빠지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상품의 가치가 정직하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옷을 공짜로 입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중고 시장에서 50만원치 옷을 사서 입다가 50만원에 가까운 금액에 되파는 거예요. 그럼 저는 옷을 공짜로 입은 셈이 되죠. 물론 이때 요령이 중요해요. 인기가 많은 스테디셀러(Steady Seller)나 한정판 모델을 사야 돼요. 특히 출시되자마자 품절되는 모델은 웬만하면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이런 모델을 잘 공략해야 돼요. 또 상태가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꿀매물’을 잘 사는 것도 방법이에요. 제 입장에서 저렴하면, 나중에 되팔 때 다른 사람도 저렴하게 느끼거든요.”

–산 가격보다 더 받고 파는 경우도 있나요?

“중고 시장에선 흔히 있는 일이에요. 한 번은 ‘아워레가시’라는 브랜드의 데님 청바지를 20만원에 사서 5개월 입고 30만원에 판 적이 있어요. 제가 살 때도 인기가 많았는데, 워낙 구하기가 어렵다보니 중고 가격이 계속 올랐거든요. 중고 가격은 시장 수요가 정확하게 반영됩니다. 최근 논란이 된 나이키 신발 중 흰색과 검색이 섞인 덩크 로우 ‘범고래’가 대표적이죠. 새재품 정가 12만9000원 짜리가 한때 30만~40만원까지 올랐어요. 반대로 지금은 흔해져서 10만원에도 살 수 있죠.”

–최근 관심 갖는 제품이 있나요?

“네. 뉴발란스의 992 모델을 눈여겨 보고 있어요. 누구나 좋아하는 디자인에 오랫동안 사랑받은 모델이라,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변하지 않을 거 같거든요. 다만 판매가 25만9000원인데, 최근 중고 시세는 50만원 전후라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중고는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게 핵심인데, 제 기준에서는 프리미엄이 좀 과한 거 같아서요.”

중고 플랫폼 번개장터 홈페이지에 '롤렉스 급매'라고 검색한 화면. 판매글 제목에 급매, 초급매 등 설명이 붙어있다./번개장터 홈페이지

HOW

여기까지만 들으면 중고 거래는 안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고 거래는 정가제(定價制)가 아니다. 시세는 오락가락하고, 사각지대를 이용한 사기도 판친다. 그래서 이른바 선수들은 자기만의 거래 노하우가 있다. 여러 플랫폼에 수시로 접속하고, 시세를 추적해 저렴한 가격에 매입을 해야 ‘최고의 거래’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호갱노노 - 최소 1주일 동안 시세를 좇아라

중고 시장의 가격은 주관적이고, 시세는 유동적이다. 게다가 반품이나 환불이 어려워 구매는 신중해야 한다. 시세를 모르고 싸다는 생각에 무작정 샀다가는, 다음날 상태는 더 좋은데 가격 저렴한 매물이 나올 수도 있다. 호갱(호구 고객)이 되고 싶지 않다면, 최소 1~2주간 해당 제품이 얼마에 팔리는지 추적하고,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얘기를 통해 시세를 파악해야 한다.

✔ 꿀매물 잡기 - 3개 이상의 플랫폼에서 발품을 팔아라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콜렉티브, 후르츠패밀리 등등. 중고 거래 플랫폼은 많고, 매물은 더 많다. 구매 시기, 관리 상태에 따라 가격도 제각각이다. 원하는 물건을 정했다면 여러 플랫폼에서 발품을 팔아 최적의 매물을 찾아야 한다. 일부 판매자는 빨리 처분하기 위해 다른 매물보다 10~20%씩 저렴하게 올리기도 한다. 빨리 사는 사람이 임자기 때문에, 원하는 제품의 키워드 알림을 등록하고 수시로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 가격 방어 - 스테디셀러, 한정판을 공략해라

중고 거래는 물건을 되팔아야 완성된다. 이를 위해 가격 방어가 잘 되는 브랜드와 모델을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즌 상품보다 스테디셀러와 한정판 모델이 가격 방어가 잘 된다. 사용할 때도 상품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물건을 임의로 수선을 하거나 구성품을 분실하면 되팔 때 가격이 깎이는 명분이 된다.

✔ 사기꾼 걸러내기 - 판매자의 정보에 주목하라

대부분 플랫폼에는 판매자에 대한 후기가 남는다. 당근마켓은 거래가 끝나면 상대방에 점수를 줄 수 있는데, 점수를 뜻하는 ‘매너온도’가 높을수록 신뢰도가 높다. 번개장터는 판매 횟수나 팔로워 수가 많을수록 정직한 판매자일 확률이 높다. 또, 거래 이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기꾼일 가능성이 적다. 1. 첫 거래부터 고가의 제품 하나만 달랑 올려놓는 사람 2. 지나치게 싸게 파는 사람 3. 입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있다.
[돈그랑땡]은 ‘잘쓰기’, ‘잘모으기’, ‘잘굴리기’ 비법을 찾아갑니다. 호구성 소비, 짠내만 나는 절약, 무모한 투자는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