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살고 있는 50대 회사원 A씨는 최근 경기도청 세정과에서 보낸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혹시 과태료인가 싶어 두려워하며 봉투를 뜯어보니, 뜻밖에도 ‘2023년 경기도 성실납세자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기도 성실납세자는 최근 7년간 28차례(연도별 4회 이상) 이상 지방세를 제때 낸 사람들이 대상이다. 액수는 상관없다. 경기도 성실납세자로 선정되면 1년 동안 의료기관 종합검진비를 최대 30% 할인받고, 농협은행 예금·대출금리 우대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구 1360만명이 살고 있는 경기도에서 올해 성실납세자로 선정된 사람은 모두 20만7750명(약 1.5%). A씨는 “경기도 성실납세자로 뽑혔다는 우편물을 받았는데 통장에 여유자금도 없는 내 입장에선 썩 유쾌하지 않았다”면서 “우편물 안에 카드 모양의 ‘성실납세자 인증서’도 있었는데 그걸 보고 지인들은 ‘호구인증서’라고 말해 주더라”고 말했다.
A씨는 “국민개세(國民皆稅:모든 국민은 세금을 낸다)가 원칙인데,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율이 40%에 육박하니 ‘호구인증서’라는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며 “열심히 세금만 내고 있구나 싶어서 씁쓸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매우 높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상후하박(上厚下薄) 구조라고 해도 국민이라면 최소한의 세금, 단 1만원이라도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A씨의 지적처럼 한국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한국에서 근로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의 비중은 37.2%였다.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4명은 근로소득이 있어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정부가 소득세 과표 기준을 고쳤는데, 이에 따라 면세자 비중은 1%포인트 더 높아질 전망이다.
면세 근로자 비중이 높은 이유로는 과도한 세제 혜택 등이 꼽힌다. 정치권은 표를 의식해 면세자 축소 문제를 수년간 언급하지 않고 있고, 정부 역시 여론 반발 때문에 면세자 이슈는 입밖에 내지 않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일본의 급여소득자는 5270만명이었다. 이 중 소득세를 납부한 사람은 4513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85.6%가 납세 의무를 이행했다. 면세자 비중은 14.4%였다.
전문가들은 저출산·고령화로 미래 세수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고소득층에 대한 일방적인 세금 거두기는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면세 근로자 비중이 지금처럼 높게 유지되는 건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으며, 면세자 적정 비율에 대한 국가 차원의 논의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세금 쏠림으로 인해 조세 저항과 계층 분열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근로소득세 결정세액은 52조6986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중 38조5760억원을 상위 10%의 근로소득자가 냈다. 전체 세액의 73.2%에 해당한다. 상위 10%가 부담하는 세액 비중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