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인공 고석현(29)씨는 식당 브랜드 3개를 손수 만들었다. 또래들은 갓 취업했을 나이지만, 고씨는 23살부터 장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친구들이 수업을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할 때, 고씨는 대학을 그만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동 킥보드 대여 사업을 했다. 음식 장사를 하다 전재산을 날리고는, 요리를 배우겠다며 무급(無給)으로 횟집에서 일했다. “실력도 없이 주방에서 자리만 차지하냐”며 면박 주는 선배들의 눈을 피해, 시장에서 죽은 생선을 구해 칼질을 연습했다. 첫 식당을 열고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영업 시간 14시간 내내 자리를 지켰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그는 현재 ‘고씨네고추장찌개’, ‘남영동양문’, ‘천하제일솥뚜껑’ 등 3개 브랜드로 직영점 5곳, 가맹점 5곳을 운영 중이다. 그의 외식업 회사 ‘고씨네푸드’의 지난해 매출은 약 88억원이다. 고씨는 “SNS로 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처럼 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대학은 왜 그만뒀나요?
“대전에 있는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다녔는데, 미래가 안 보였어요. 전공은 적성에 안 맞고, 졸업 후의 진로가 그려지지 않았죠.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녔어요. 패션에 관심이 많아 1년 반 동안 유니클로 매장에서 제품 진열 기획을 하며 매니저까지 지냈어요. 이후 전동 킥보드 대여 사업, 돈까스집 등 여러 장사를 했죠.”
–킥보드 대여 사업은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돈을 벌고 싶었어요. 전동 킥보드가 국내에 막 알려질 때라, 행사장에서 대여를 하면 인기가 많을 거 같더라고요. 전재산을 털어 100만원 짜리 전동 킥보드 8대, 150만원 짜리 중고 벤을 사서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봄에는 벚꽃 축제, 여름에는 해수욕장, 가을에는 단풍 명소를 다녔죠.”
–20대 초반에 떠돌이 생활, 힘들었을 거 같은데.
“그렇죠. 경북 포항에 있다가, 다음 날 경기 포천에 축제가 있으면 짐을 챙겨서 갔어요. 장사하는 동안 자리를 지켜야 해서 라면,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고, 찜질방을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나요?
“주말 없이 1년 동안 장사했는데, 하루에 많게는 80만원씩도 벌었어요. 처음으로 큰 돈을 만져 봤죠. 근데 들쑥날쑥한 매출, 수시로 바뀌는 일터와 잠자리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수영장 팝업스토어를 추천했어요. 사람이 쏟아진다는 말을 믿고 입점해서 돈까스를 팔았는데, 적자가 나서 모아둔 돈 1500만원을 몽땅 날렸습니다.”
–원점으로 돌아온 셈인데, 장사를 시작한 걸 후회하진 않았나요?
“돈은 다 잃었지만 어떻게 돈을 버는지 깨달았으니,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돈까스집을 하면서 음식을 대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포항에 있는 이자카야에서 요리를 배웠어요. “재료 손질도 못하는 놈”이라고 선배들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다른 횟집에서 공짜로 설거지를 해주는 대신 칼질을 배웠고, 수산시장에서 3000원 짜리 죽은 생선으로 혼자 회 뜨는 법을 연습했어요.”
–요리가 손에 익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1년 동안 남들보다 2~3배씩 많이 일하니까, 생선 손질은 물론 가게에 있는 모든 메뉴를 수준급으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실력을 인정받아 1년만에 한 지점의 조리실장이 됐고, 제가 맡은 매장의 월 매출을 2000만원에서 4000만원으로 올렸어요.”
◇SNS로 외식업을 배우다
–첫 창업은 언제 했나요?
“2020년 초, 서울 중구 을지로 상권에 ‘고씨네 고추장찌개’라는 식당을 열었어요. 제 음식 베이스는 일식이지만, 일식은 유명한 셰프들이 많아 엄두가 안 났어요. 그래서 사이드 메뉴 취급을 받아온 고추장찌개로 업계 1등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창업을 했습니다.”
–외식업 경력이 있는 만큼, 평범한 고추장찌개집은 아니었을 거 같은데.
“맞습니다. 점심에는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고추장찌개를 뚝배기에 담아 단일 메뉴로 팔았어요. 오피스 상권인 을지로의 직장인들을 공략한 거죠. 저녁에는 젊은 손님을 겨냥해 조명을 어둡게 하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서 포차처럼 꾸몄어요. 메뉴도 ‘트러플 감자전’, ‘대게라면’ 등 다양하게 팔았죠.”
–메뉴가 이색적인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SNS 중독이에요(웃음). 인스타그램으로 요즘 뜨는 맛집을 검색하고, 인기 메뉴를 파악하는 등 트렌드를 좇는 거죠. 요즘 식당 창업은 SNS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안 돼요. 맛 뿐 아니라 비주얼, 콘셉트까지 잡힌 메뉴를 다양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SNS에 성공 케이스가 많으니까 그걸 참고하는 거죠.”
–SNS에서 본 메뉴를 그대로 따라하는 건가요?
“음식은 특허의 개념이 없어서 따라해도 되지만 저는 식당의 정체성과 메뉴의 연속성을 중시해요. 첫 식당인 고씨네고추장찌개는 감바스, 낙지볶음, 짜파구리 등 각종 인기 메뉴를 총동원했어요. 나름 고민한 메뉴지만 연속성이 없었죠. 하지만 두번째 브랜드인 남영동양문은 소갈비 전문점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사이드 메뉴를 만들었어요. 자투리 고기를 이용한 ‘갈비라구스파게티’, 뼈로 국물 맛을 낸 ‘백골라면’이요.”
–사이드 메뉴 외에 또 어떻게 SNS를 공략했나요?
“기본 차림상부터 신경 썼어요. 남영동양문의 대표 메뉴는 ‘생갈비 한판’이에요. 고기 600g에 가격은 6만9000원입니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기본 차림상이 나오면 손님들은 생각이 달라져요. 밑반찬으로 해장국, 양념게장, 냉면이 나오거든요. 손님 중 열에 아홉은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라고 할 정도입니다(웃음).”
–SNS용 사진 찍기도 좋겠네요.
“그렇죠. 밑반찬만 찍어도 푸짐해 보이거든요. 덕분에 ‘가성비 맛집’이라는 수식어도 생겼습니다. SNS 특화 메뉴도 있습니다. ‘백골라면’은 뼈를 통째로 넣어서 시선을 사로잡고, 소 대창과 양에 마늘 양념을 버무린 ‘마늘호르몬’은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하죠. 모두 인스타그램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템들입니다.”
–바이럴 마케팅을 잘하네요.
“많은 사장들은 창업하자마자 맛집 인플루언서, 블로거를 고용해서 마케팅을 하는데, 저는 시작점이 잘못됐다고 봐요. 마케팅은 음식으로 시작해서 음식으로 끝나야 해요. 홍보에 돈을 많이 써도, 식당 고유의 콘셉트와 메뉴 특색이 없다면 한계가 있습니다. 돈 주고 마케팅을 할 시간과 노력을 아껴서, 가끔씩 SNS에 접속해 화제가 된 맛집들을 공짜로 벤치마킹을 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