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한 노인정신의학 전문의 와다히데키(和田秀樹)씨. 노화 관련 책을 다수 써온 베스트셀러 작가다. 62세인 와다씨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중요한 건강 지표로 삼고 있다. 와다씨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남성 호르몬일까.
와다씨는 “남성 호르몬은 중장년기 삶의 활력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변수”라며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면 심신이 녹슬고 ‘무기력한 뇌’를 갖게 될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남성 호르몬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론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꼽힌다. 남성 호르몬 수치를 검사한면, 통상 테스토스테론 수치 측정을 의미한다.
남성 호르몬은 대개 40~5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70~80대에는 청년 시절의 3분의 1까지 감소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30대부터 남성 호르몬 감소가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30대 남성인데 에너지가 없어보인다면, 남성 호르몬 부족이 원인일 수 있다. 줄어드는 남성 호르몬은 노화로 점점 둔해지는 뇌에 영향을 미친다.
와다씨는 “나이가 들면 시력, 청력, 근력, 기력, 집중력 등 여러 신체 능력이 후퇴하게 된다”면서 “동시에 삶의 의욕도 줄어드는데, 인간의 마음과 사고를 관장하는 대뇌 전두엽의 노화 속도가 신체에서 가장 빠른 것과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전두엽 기능이 약해지면, 주의력·직관력·창의력·판단력 등이 전부 나빠진다. ‘귀찮다’, ‘재미없다’, ‘지루하다’, ‘우울하다’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일상을 삼키고, 사소한 일에 화부터 내게 되고,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진다.
“누구보다 다정다감했던 남편(혹은 아빠)이 요즘은 입만 열면 버럭 짜증부터 낸다”는 가족들의 고민이 시작되는 것도 이때부터다. 남성 호르몬은 중년 이후 남성의 체형도 바꿔버린다. 복부 비만으로 ‘배불뚝이’가 되기도 하고, 몸이 앞으로 구부정해지는 ‘새우등’도 나타난다.
와다씨는 작년에 발간한 <언제까지나 쌩쌩한 뇌>에서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면 성적 기능만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만남도 귀찮아지고, 새로운 일에 흥미나 재미도 잃게 된다”면서 “체력이나 음주 능력도 예전 같지 않고 젊은이들을 보면 어울리기 어렵다는 심리적 거리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남성 호르몬은 외부 활동과도 연관이 있다. 와다씨는 “지난 2013년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가 남성 호르몬을 도포한 집단의 특징을 조사해 발표했는데, 기부나 자원봉사 등에 적극적이었던 사람이 많았다”면서 “남성 호르몬이 많은 사람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고, 곤경에 빠진 약자들을 돕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항상 무기력해 보이고, 이야기를 해도 재미가 없는 사람에겐 아무도 끌리지 않지요. 남성 호르몬이 부족하지 않아야 쌩쌩한 뇌를 가질 수 있고, 이런 사람은 늘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차서 사람들이 절로 모여듭니다.”
✅외로운 인생 후반전 보내지 않으려면
일본 간병업계에는 ‘현역 시절에 ‘사짜’였던 사람은 거만해서 보살피기 힘들다’는 속설이 있다. 일본에서도 사짜는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일본어로는 代議士), 교사 등의 직업을 의미한다. 현역 시절에 고위직에 종사했던 사람일수록, 나이가 들어서까지 거만한 태도를 취하며 간병인에게 고성을 지르고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짜 직업을 가졌던 고령 남성이 ‘급발진’하게 되는 이유로, 와다씨는 남성 호르몬 부족을 꼽는다. 인생 후반기에 호르몬 이상으로 짜증과 화를 많이 내면 주위에 사랑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외딴 섬’에 갇힌 것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와다씨는 “남성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남성 갱년기 장해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여성과 달리 증상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서 “남성 호르몬 수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면, 마음의 병(무기력, 피로, 건망증, 불면증, 우울증 등)이 깊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라클 피부과의 김성권 원장은 “남성 호르몬 수치는 혈액 검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는데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정상 범위는 대략 3~9ng/ml”라며 “만약 수치가 정상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면 금주, 금연, 수면,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권 원장은 이어 “가공육이나 과자, 탄산음료 등은 피하고, 생선과 채소, 과일, 견과류 등을 충분히 섭취하면 남성 호르몬 수치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서 “수치가 지나치게 낮다면 의사와 상의해 주사 치료를 받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