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6번 출구에서 100m쯤 떨어진 한국시계거래소 압구정점. 1층 전체가 통 유리로 된 건물 앞에 포르쉐, 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차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흔히 골목 구석진 곳에 있는, 좁고 허름한 전당포 같은 중고품 가게를 떠올리면 오판이다. 여느 백화점 명품 매장 못지 않다.
1층 입구를 들어서자 대리석 안내 데스크와 흰색 가죽 소파가 눈에 들어온다. 천장, 바닥, 벽도 온통 아이보리 색.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난다. 하지만 시계거래소에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직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계단 양쪽으로 시계 진열대가 놓여있고, 진열대 위엔 최근 팔린 시계의 실거래가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광판이 설치돼 있었다. 마치 시계 박물관 같은 모습. 이곳엔 백화점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리차드밀, 파텍필립, 롤렉스 등 고급 명품 시계들이 수십 점씩 전시돼 있었다.
한국시계거래소는 국내에서 명품 시계를 가장 많이 유통하는 중고 명품 시계 전문점 중 하나다. 태그호이어, 오메가처럼 주력 상품이 1000만원 이하인 브랜드에서부터 엔트리 모델이 1억원이 넘어가는 리차드밀 등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다.
“‘파텍필립’ 브랜드의 ‘노틸러스’ 모델은 미리 결제를 하고도 상품을 받으려면 몇년씩 기다려야 하고, 롤렉스도 인기 모델들은 새벽부터 5~6시간씩 기다리는 ‘오픈런’을 열번 해도 산다는 보장이 없어요.”
김용정 점장이 말하는 중고 거래가 활발해진 이유다. 김 점장은 “최근 한 50대 여성 딸 결혼을 앞두고 사위에게 예물로 롤렉스 시계를 주고 싶다며 찾아왔는데, 백화점은 갈 때마다 예약이 꽉 차 있어서 구경조차 못했다고 했다”며 “‘결혼 예물을 어떻게 중고로 사느냐’는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를 물었더니 그는 “롤렉스가 압도적인 1등”이라고 했다. 한국시계거래소의 경우 전체 거래량의 40~50%가 롤렉스라고 한다. 대중적으로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만큼 수요는 많은데, 인기 모델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롤렉스는 새제품 가격도 꾸준히 올라서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 게다가 중고로 되팔면 수백만원의 웃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모델도 여럿 있다고 한다.
김 점장은 시쳇말로 “눈에 보이면 무조건 사야하는 모델”이라며 롤렐스 시계 3점을 꺼내놨다. 그는 “어떤 모델은 5년 전에 사서, 실컷 차다 팔아도 웃돈 100만원을 받고, 어떤 건 어제 사서 오늘 팔아도 100만원을 깎아줘야 한다”면서 “중고거래 시장에서만 보이는 묘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면 사야 되는 모델 3종
✔데이저스트 41미리 ‘플루쥬빌 10포인트’
데이저스트는 롤렉스의 가장 클래식한 모델로, 오랫동안 롤렉스를 대표해온 모델이다. 데이저스트는 ✅케이스 크기 41미리 ✅밴드는 다섯 가지 선으로 나뉜 ‘쥬빌리’ ✅ 베젤은 세로로 줄이 파인 ‘루티드’ ✅ 판 색상은 흑, 청, 초코 ✅숫자 대신 다이아가 박혀 있는 10 포인트. 위 5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모델이 인기가 가장 많다.
✔서브마리너 그린제품(ex. 헐크, 스타벅스)
서브마리너는 롤렉스의 다이버 라인 모델이다. 과거에는 청/금색 베젤에 금/은색 밴드가 있는 ‘청콤(파란색 콤비)’, 흑/금색 베젤에 금/은색 밴드인 ‘흑콤(검은색 콤비)’ 모델이 인기였지만, 최근에는 롤렉스를 상징하는 ✅초록색 베젤에 ✅스틸 밴드 모델이 인기라고 한다. 이 모델의 구형은 ‘헐크’, 신형은 ‘스타벅스’라고 불린다.
✔GMT마스터2 일부 모델(ex. 스프라이트, 팹시, 배트맨)
GMT마스터는 비행 조종사들을 위한 모델이다. 베젤의 색깔 조합별로 청/적은 ‘팹시’, 청/흑은 ‘배트맨’이라고 불린다. 가장 최근 모델은 녹/흑 조합인 ‘스프라이트’다. 스프라이트 모델은 롤렉스 매장 직원들도 구경 못해봤을 만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