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아무리 유능하고 성실한 직장인이라도 언젠가는 마주쳐야 하는 정년. 약간의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는 때가 닥친다. 불안하고 막막한 퇴직 이후의 삶,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나보다 앞서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조언이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80대 선배들이 “퇴직하고 나서 이걸 하길 참 잘했다, 시간을 되돌려도 이것만은 꼭 하겠다”고 추천하는 건 무엇일까?
일본 잡지 프레지던트가 이달 초 80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가 ‘퇴직 후에 해서 참 좋았던 3가지’를 정리해봤다.
1️⃣건강하려면 많이 걷고 치아 관리하라
“80대를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60~70대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 80대가 되고 나서 시작하면 늦다.”
여든살에 들어서면 몸이 하나둘 고장나기 시작한다. 보청기, 틀니, 지팡이, 약보따리가 일상이 되는 시기가 바로 80대다. 그래서인지 “현재 건강 수준에 만족하십니까?”란 질문에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한 80대는 전체의 14.5%에 불과했다. 오히려 ‘만족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대답이 21.5%로 더 많았다.
인생 후배들을 위한 건강 관리법에 대한 질문에는 ‘평소에 열심히 걸어라’라는 응답이 전체의 77%로 가장 많았다. 젊을 때부터 관리하면 좋을 신체 부위로는 응답자의 81%가 ‘치아’를 꼽았다. 그 다음 허리, 하반신, 눈, 머리(두발) 순이었다.
김현정 서울대 치대 교수는 “구강 건강이 나빠지면 노쇠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가 나와 있을 정도로, 구강 건강은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한다”면서 “치아와 잇몸이 부실한 고령자는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기력이 금방 쇠하는데, 이렇게 되면 근력 저하와 반복적인 낙상, 만성질환 악화 등의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고령 환자들 중엔 씹을 때마다 아파서 먹는 게 겁난다는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구강 관리의 기본은 올바른 양치질입니다. 양치질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중요하고,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에 따라 노후가 달라져요.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치아가 썩고, 식욕 저하로 만성적 영양 불량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이 갑자기 식사량이 줄면 치과 질환을 의심해야 합니다.”
2️⃣자식한테 손 안 벌릴 만큼은 모아둬라
노후 생활비는 평생 동일한 금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은퇴 직후엔 바깥 활동이 여전히 왕성하기 때문에 은퇴 이전과 비교해 생활비는 비슷하게 든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외부 활동은 뜸해지고, 배우자 사망 등의 변수도 생겨 가계 씀씀이는 점점 감소한다. 80대엔 50~60대에 쓰던 생활비의 절반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은퇴 전문가도 있다.
베스트셀러 <87세 비즈니스맨, 지금이 최고 전성기>를 펴낸 88세 코리야마시로(郡山史郎)씨는 “나이가 들수록 소비 욕구가 약해지기 때문에 큰 병에 걸리지 않는 한,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퇴직하고 돈을 더 많이 벌겠다고 자꾸 욕심을 내면 오히려 삶의 균형이 깨져 불행해지기 쉽다”고 말했다.
노후 자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설문조사에 참여한 80대 남녀 200명은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저축은 해둬라”라고 했다. 이밖에 연금만 갖고서 생활할 수 있게 미리 재무설계에 힘쓰고, 절약, 보험 가입, 대출 상환 등도 신경쓰라고 조언했다.
70대 이하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투자 활동으로는 주식 투자가 최고로 뽑혔고, 그 다음으로는 펀드, 연금, 일본채권, 금투자, 해외채권 등의 순이었다.
3️⃣퇴직 후 외로움은 ‘넓얕행’으로 이겨내라
‘생활비가 부족하면 어떡하지?’. 퇴직 후의 삶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은 돈 걱정부터 한다. 하지만 80대 선배들은 노년엔 돈보다는 외로움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특히 직장에 평생 헌신하며 살아온 ‘회사올인형 남성’은 퇴직 후 사회적 고립에 괴로울 수 있는 만큼, 지루한 고독감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문에 참여한 80대 선배들은 노년 고독을 이겨낼 구체적인 방법으로 ‘취미 활동에 참여한다’, ‘지역활동에 참여한다’, ‘부부 대화를 자주 한다’, ’부부·가족 여행을 떠난다’ 등을 추천했다. ‘늙으면 부부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더니, 설문에 참여한 80대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인생에서 소중히 생각했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배우자’라고 답했다.
퇴직 후 고독감을 없애기 위한 최고 방법은 재취업이라는 의견도 있다. 회사에 매일 가서 사람을 만나면 고독감은 저절로 해소된다는 것이다. 또 출퇴근을 매일 하면 자연스럽게 건강도 유지되고, 작게나마 수입도 생기니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88세인 코리야마시로씨는 “회사 정년은 회사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일할 의욕이 있고 몸이 허락한다면 ‘내 정년은 100세’라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후 전문가인 오오에히데키(大江英樹)씨는 “회사올인형 남성들은 퇴직 후에 인간 관계가 끊어지면 심각한 고독감에 우울증을 앓곤 한다”면서 “회사에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저 ‘직장동료’일 뿐이고 ‘친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퇴직 이후의 인간관계는 회사 다닐 때처럼 긴밀할 필요는 없고, 넓얕행(넓고 얉고 행복하게)이면 충분하다고 오오에씨는 덧붙였다.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한다>의 저자인 사이토다카시(齋藤孝)씨도 “퇴직 남성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변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기 때문에 다들 자리를 피해줬으면 하는 존재로 여긴다”면서 “평범한 장년 남성을 나서서 좋아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