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없어서인지 제 자산수명은 60세래요. 오늘이라도 회사 관두고 싶은데, 늙어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평생 일개미로 살아야 하나봐요.”

“제 자산수명은 100세 이상이라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안심해도 될까요? 쇼크받을까봐 예상 생활비는 좀 적게 넣고, 자산을 넉넉하게 입력하긴 했어요.”

“현재 내 자산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유용한 계산기네요. 자산수명 100세 이상인 분들, 진심 부럽습니다.”

지난 14일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연금솔루션 개발업체 [셀리몬]과 함께 개발한 ‘자산수명 간편 계산기’가 소개된 이후,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용 후기가 쏟아졌다. 자산수명은 내가 모아둔 은퇴생활 자금이 유지되는 기간을 뜻하는데, 계산기를 사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무료로 내 자산수명을 확인할 수 있다(⇒계산기는 기사 하단 배너를 클릭).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자산수명 계산기’가 알려준 자산수명 결과를 놓고, 예비 은퇴자들 사이에선 희비가 엇갈렸다. “한 달에 500만원씩 써도 100세까지 재무적으론 문제없다고 한다”면서 안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들 교육비 쓰느라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자산수명마저 작게 나오니 숨막힌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다.

행복한 노년을 꿈꾸면서 자산수명 계산기를 두드려봤고 결과도 알았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왕개미연구소]가 김진영 밸런스자산연구소 대표와 함께 자산수명을 고려한 은퇴 준비법에 대해 알아봤다.

✅100세 자산수명 위협하는 의료비

‘자산수명’은 이용자 본인이 은퇴 시기와 생활비와 운용수익률 등을 직접 판단해서 입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보수적으로 보는지에 따라 입력값이 달라지고 당연히 결과도 바뀐다. 예컨대 은퇴자산 예상 운용 수익률의 경우, 별 고민 없이 ‘아마 3% 정도는 낼 수 있겠지’ 하면서 입력할 수 있다. 그런데 연 3%와 연 2%는 단 1%포인트 차이이지만 자산수명을 10년씩 바꿀 정도로 차이가 엄청나다.

김진영 대표는 “늙어서 병치레를 하게 되면 돈이 많이 깨지는데, 계산기는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는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자산수명 결과가 100세 이상이라고 해서 안심하지 말고, 데이터를 너무 낙관적으로 추정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비나 간병비만 해도 ‘난 보험에 들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래 전에 가입한 보험은 만기가 70~80세로 짧기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무용지물일 수 있다. 또 대부분 죽기 전에 얼마 동안은 남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이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지출이 커질 위험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노후자금을 소진하는 시기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일본에선 모아둔 노후 자금은 70세 생일을 지난 다음부터 헐어 쓰라고 권한다. 근로소득이 있는데도 부득이 노후자금을 써야 한다면, 자산의 4% 이내가 적당하다.

보수적으로 미래 상황을 추정했는데도 자산수명이 넉넉하게 나왔고 다 쓰고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자산 일부(주의:재산 전부는 아니다)를 생전증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 한다. 죽고 난 다음에 이뤄지는 상속에 비해 절세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증인(물려받는 사람)이 젊어서 경제 활동이 왕성할 때 물려줘야 돈의 효용 가치도 높아진다.

✅‘전부 내 돈이야’ 치명적 착각

연금와 현금 준비가 부족한 것 같은데 자산수명 계산 결과는 황당할 정도로 길게 나왔다면, 은퇴자산에 부동산까지 모두 포함해 계산한 것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진영 대표는 “은퇴자산은 내가 원하면 언제든 빼내서 쓸 수 있는 자유로운 돈이어야 하며, 자녀지원·상속 등 목적이 있는 돈은 제외해야 한다”면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는 돈만 은퇴자산에 포함시켜야 제대로 된 자산수명 계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가령 수십억짜리 부동산이 있다고 해도 팔리지 않아 ‘쓰지도 못할 돈’이라면, 그건 그저 ‘세금 빨대’일 뿐이다. 꼬박꼬박 연금이 수백만원씩 들어오는 고령자의 행복지수가 집부자보다 훨씬 높다.

인생 노년기에 ‘흑자파산’이 생기는 이유는 자산(stock)은 많은데 현금 흐름(cash flow)이 원활하지 않아 미스매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십억짜리 강남 아파트를 갖고 있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거주지일 뿐이고, 현금 흐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은퇴자산이 아니다. 더구나 부동산은 현금화한다고 해도 세금 등 부대 비용이 커서 실제 내가 손에 쥐는 금액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부동산 처분 혹은 다운사이징(규모축소) 등의 의사 결정과 관련해선 부부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남편은 “부동산은 전부 내 은퇴자산이야, 적당한 시점에 팔아서 노후 생활비로 써야지”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왜 함부로 집을 파냐, 애들 것이니 손대지 마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물려줘야지’ 욕심 버려라

자산수명이 평균수명보다 훨씬 짧게 나왔다면, 은퇴는 그야말로 ‘생존 싸움’이 되고 만다. 행복해야 할 노년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황이 되어버리고, 재미나 보람도 없어 삶 자체가 고역이 된다. 내가 쓸 돈도 모자란 상황인데, ‘애들 앞으로 재산은 물려줘야지’ 하는 생각은 사치다.

김진영 대표는 “노년기에 내가 쓸 돈이 부족하다면 자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계 재무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원래는 얼마씩 보태주려고 했는데 내 자산수명을 계산해 보니 이렇더라, 나중에 너희들이 늙은 부모 뒤치다꺼리하려면 힘들지 않겠냐, 그래서 지원을 절반으로 줄이려고 한다”라는 취지로 자녀와 대화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어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재무적인 준비가 부족하다면 적극적으로 대책을 찾아야 하는데, 불안하다면서 오히려 위축되어 소극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자산수명이 짧은 사람들은 예·적금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은퇴 이후 자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상화폐 같은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라는 건 아니다. 자산배분형 펀드나 고금리 채권 등 예금 이자보다는 기대수익이 높으면서 변동성이 낮은 상품을 찾아내서 자산수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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