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없어서인지 제 자산수명은 60세래요. 당장이라도 회사 관두고 싶은데, 늙어서 굶어 죽지 않으려면 평생 일해야 하나봐요.”

“자산수명이 100세 이상이라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믿어도 되나요? 쇼크받을까 봐 예상 생활비는 좀 적게 넣고, 자산을 넉넉하게 입력하긴 했어요.”

최근 조선일보 ‘왕개미연구소’가 연금 설루션 개발 업체 셀리몬과 함께 개발한 ‘자산수명 간편 계산기’를 선보인 이후, 예비 은퇴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자산수명은 내가 모아둔 은퇴 생활 자금이 유지되는 기간을 뜻하는데, 조선닷컴 사이트(www.chosun.com/service/lifespan)에서 누구나 무료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행복한 노년을 꿈꾸며 계산기를 두드려봤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왕개미연구소’가 김진영 밸런스자산연구소 대표와 함께 자산수명을 고려한 은퇴 준비법에 대해 알아봤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100세 자산수명 위협하는 병원비

‘자산수명’은 이용자 본인이 은퇴 시기와 생활비와 운용수익률 등을 직접 판단해서 입력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지, 아니면 보수적으로 보는지에 따라 입력 값이 달라지고 당연히 결과도 바뀐다. 예컨대 은퇴자산 예상 운용 수익률의 경우, 연 3%와 연 4%는 단 1%포인트 차이이지만 자산수명을 10년씩 바꿀 정도의 영향을 준다.

김진영 대표는 “늙어서 병치레를 하게 되면 돈이 많이 깨지는데, 계산기는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는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자산수명 결과가 100세 이상이라고 해서 안심하지 말고, 데이터를 낙관적으로 추정한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비나 간병비만 해도 ‘난 보험에 들었으니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래전에 가입한 보험은 만기가 70~80세로 짧기 때문에 정작 필요할 때 무용지물일 수 있다. 또 대부분 죽기 전에 얼마 동안은 남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이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지출이 커질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

✅‘전부 내 돈이야’ 치명적 착각

연금과 현금 준비가 부족한 것 같은데도 자산수명 계산 결과가 황당할 정도로 길게 나왔다면, 은퇴자산에 부동산까지 모두 포함해 계산한 것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진영 대표는 “은퇴자산은 내가 원하면 언제든 빼내서 쓸 수 있는 자유로운 돈이어야 하며, 자녀지원·상속 등 목적이 있는 돈은 제외해야 한다”면서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는 돈만 은퇴자산에 포함시켜야 제대로 된 자산수명 계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생 노년기에 ‘흑자파산’이 생기는 이유는 자산(stock)은 많은데 현금 흐름(cash flow)이 원활하지 않아 미스매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은 현금화해도 세금 등 부대 비용이 커서 실제 내가 손에 쥐는 금액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부동산 처분 혹은 다운사이징(규모 축소) 등의 의사 결정과 관련해선 부부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남편은 “부동산은 전부 내 은퇴자산이야, 적당한 시점에 팔아서 노후 생활비로 써야지”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왜 함부로 집을 파냐, 애들 것이니 손대지 말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물려줘야지’ 욕심 버려라

자산수명이 평균수명보다 훨씬 짧게 나왔다면, 은퇴는 그야말로 ‘생존 싸움’이 되고 만다. 행복해야 할 노년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상황이 되어버리고, 재미나 보람도 없어 삶 자체가 고역이 된다. 내가 쓸 돈도 모자란 상황인데, ‘애들 앞으로 재산은 물려줘야지’ 하는 생각은 사치다.

김진영 대표는 “노년기에 내가 쓸 돈이 부족하다면 자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가계 재무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너희에게 원래는 얼마씩 보태주려고 했는데 내 자산수명을 계산해 보니 이렇더라, 나중에 너희가 늙은 부모 뒤치다꺼리하려면 힘들지 않겠냐, 그래서 지원을 절반으로 줄이려고 한다”라는 취지로 자녀와 대화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어 “은퇴를 앞두고 있는데 재무적인 준비가 부족하다면 적극적으로 대책을 찾아야 하는데, 불안하다면서 오히려 위축되어 소극적으로 변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자산수명이 짧은 사람들은 예·적금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은퇴 이후 자산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