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받으면 패가망신합니다. 1년에 2000만원 넘게 배당받으면 세금이랑 건보료 때문에 남는 게 없어요. 배당받기 전에 현금화하는 게 이득이에요.”
“세금으로 다 뜯어가는데 배당 욕심내면 큰일납니다. 다들 투기라고 욕하는 아파트 사 놓는 게 훨씬 안전하고 수익도 좋은 신선놀음입니다.”
지난 11일 조선닷컴에 실린 ‘배당생활족, 월 200만원 받으려면 필요한 투자금은’이란 기사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반응이다. 배당 투자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이고, 심지어 ‘사자마자 물린다’면서 말리기까지 한다. 한국 증시에 연 9~10%씩 배당 주는 우량주가 널려 있지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주가 변동이 심한 성장주에만 돈이 몰리는 것도 이런 인식이 한몫한다.
고배당주의 과실은 고스란히 외국인 차지다. 14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전체 주식의 외국인 지분율은 약 32%인데, 핵심 고배당주 외국인 지분율은 대부분 50%가 넘는다. 장기 투자하는 외국인 입장에선 한국 증시 우량주가 그야말로 ‘배당 맛집’인 셈이다.
왜 이렇게 한국에선 배당 투자에 대한 반감이 큰 걸까? 국민연금 고갈 위험이 닥쳐오는 한국에서 배당금은 부족한 노후 생활비를 채워줄 비밀 병기가 될 수 있는데, 무엇이 배당 투자를 가로막는 걸까.
편득현 NH투자증권 WM마스터즈 전문위원은 “한국 증시엔 세전 배당 수익률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는 기업들이 상당수 있지만 정작 투자자들에겐 외면받는다”면서 “월 167만원은 부부 최저 생계비(207만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지만, 매달 167만원씩 배당받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에 걸리고 건강보험료 피부양자에서도 탈락되는 등 벌칙이 크다”고 말했다.
✅노년기 다다익악(多多益惡) 공포
연금 생활자인 60대 이모씨는 매달 말일에 연금소득과 이자·배당 같은 금융소득을 꼼꼼히 기록한다. 국민연금에서 매달 80만원씩 받고 있는데, 이자·배당 때문에 2000만원은 넘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1년 소득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으로 잡히고, 건강보험 피부양자(소득이 적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 자격도 사라진다”면서 “국민연금으로만 생활하기 어려워서 투자하는 건데, 2000만원을 넘으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 조심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2000만원’은 개인 투자자들의 최종 수익률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선이다. 예금 이자나 주식 배당으로 1년에 2000만원 넘는 금융소득이 생기면, 종합소득세나 건강보험료 등 부대 비용이 생겨서 최종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조영욱 국민은행 투자솔루션부장은 “다른 소득 없이 금융소득만 있는 사람은 7500만원까지는 이미 원천징수(15.4%)된 세금 외에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이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다른 소득이 있는 상태에서 금융소득이 2000만원이 넘으면 누진세율이 적용되어 최고 49.5%까지 높아진다”고 말했다.
금융소득이 1년에 2000만원을 초과하면, 과세 부담만 생기는 게 아니다. 보유 부동산이 아무리 작아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위에 언급한 60대 이씨는 이미 국민연금으로 연 960만원을 받고 있는데, 만약 이자·배당이 1040만원 넘게 발생하면 피부양자에서 탈락해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소형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이씨가 내야 하는 지역가입자 기준 월 건보료는 32만원 정도다. 그나마 이씨는 작은 집에 살고 있어서 2000만원 기준인 것이고, 만약 공시가격이 9억~15억원 사이인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금융소득이 1000만원을 넘지 않아야만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표 참고>.
조재영 웰스에듀 부사장은 “건강보험료는 나중에 환급받을 수도 없고, 평생 내야할 수도 있고, 건보료 부과 방식도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복잡해서 많은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라며 “그래서인지 보험료를 안 내도 되는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만, 이씨처럼 2000만원 경계선에 아슬아슬 걸쳐있는 사람들 입장에선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이 되는 것이다.
이점옥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세무사)은 “투자 관련 의사 결정을 할 때 세금과 건강보험료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면서 “재산과 소득이 같아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는 최대 10배 차이나는 만큼, 건보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연금계좌나 절세계좌(비과세저축·ISA)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 ‘배당생활족’ 많은 이유
꿈의 배당금 생활, 연 100만엔 배당받아 생활하기, 배당생활 매뉴얼...
노인대국 일본에는 배당받아 생활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가 여럿 나와 있다. 일본은 배당 소득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부담이 생기지 않는 걸까?
요리후지타이키(頼藤太希) Money&You 대표는 “일본의 경우 배당금에 붙는 세금은 20.315%(소득세+주민세)로 분리과세되며 한 번만 내면 끝난다”면서 “분리과세되기 때문에 배당금은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험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리후지 대표는 이어 “20% 가량 내야 하는 배당 관련 세금도 비과세 계좌(NISA)에서 투자하면 세금이 전혀 붙지 않는다”고 말했다.
NISA는 한국의 절세 계좌인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와 비슷한 상품이다. 한국 ISA는 최대 1억원까지 넣을 수 있는데, 3년 유지시 수익 200만원에 대해 비과세, 초과 수익은 분리과세(9.9%) 혜택이 주어진다. 절세 상품이 없는 한국에선 그나마 ‘가뭄의 단비’ 같은 상품이긴 하다. 하지만 일본 NISA에 비하면 혜택이 미미하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자산 소득 증가를 위해 내년부터 NISA 혜택을 대폭 늘린다. 최대 1800만엔(1억6500만원) 납입액까지 풀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며, 의무 보유 기간도 없고, 만기도 없어서 평생 운용할 수 있다.
오무라오지로(大村大次郎) 전 국세 조사관은 “일본은 배당 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소득세와 주민세를 합쳐 일률적으로 약 20%만 내면 끝난다”면서 “20%는 평균적인 회사원에게 부과되는 세율과 거의 같다”고 말했다. 오무라씨에 따르면, 배당소득세 20%는 2000년대 고이즈미 내각이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내놨던 정책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