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도쿄 스카이트리 분수대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 AFP 연합뉴스

저출산 문제 극복에 진심인 일본에선 여성의 행복지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기혼 여성의 낮은 행복지수가 관심인데, 이 문제의 해결법에 출산율을 끌어올릴 열쇠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자녀 유무에 따라 여성의 행복지수 격차가 큰 편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가정 행복에 플러스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녀 양육으로 인한 마이너스 요인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결국 유자녀 여성의 최종 행복감은 낮아진다.

사토카즈마(佐藤一磨) 타쿠쇼쿠(拓殖)대 정경학부 교수가 2000~2018년에 걸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무자녀 기혼여성의 평균 행복지수는 4.11로, 유자녀 기혼여성(3.98)보다 높았다.

직업 유무에 따라 세분화한 여성의 행복지수는 더 의미심장하다. 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의 행복지수가 가장 낮았고, 자녀가 없는 전업주부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았다<아래 표 참고>. 자녀를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고, 육아·가사 부담 때문에 다정했던 부부 관계도 금이 가기 쉽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혔다. 일본 기혼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이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 같다(작년 출산율 일본 1.26명, 한국 0.78명).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황혼육아와 여성의 행복도

일본에선 ‘유자녀 여성은 무자녀 여성보다 행복도가 낮다’는 생각이 기본 상식처럼 통한다. 그렇다면 황혼 육아와 여성의 행복도 관계는 어떨까.

사토카즈마 교수에 따르면, 조부모 행복도는 손주가 태어나면 당연히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직접적인 육아 부담이 생기는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사토 교수는 “고물가 여파로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조부모가 손주 육아를 책임지는 가정이 늘고 있다”면서 “이때 친손주인지 외손주인지에 따라 조부모 행복도가 달라지는데, 외손주 돌봄 여성은 친손주 돌봄 여성에 비해 행복도가 13% 가량 낮았다”고 말했다. 즉 딸이 낳은 아이들을 돌볼 때, 할머니의 스트레스는 더 커졌다.

그런데 외손주와 친손주 육아에 따른 행복지수 격차는 남성에겐 나타나지 않았다. 사토 교수는 “일본은 성별에 따른 가정 내 역할 분업이 뚜렷해서 손주를 돌보는 일은 대개 여성이 도맡는다”면서 “아내 입장에서 보면 (심적으로 부담되는) 시어머니보다는 친정 어머니에게 육아를 부탁하기 쉽고, (딸의 커리어가 끊길까봐) 외손주를 돌보게 된 고령 여성은 육체적·경제적 부담이 늘면서 행복도가 낮아진다”고 말했다.

사토 교수는 이어 “일본 여성들은 ‘자식 농사’를 끝내도 ‘손주 농사’까지 해야 해서 그야말로 평생에 걸쳐 돌봄 부담에 짓눌린다”면서 “여성에게만 몰려 있는 육아·가사 부담을 남성에게도 분산해야 하고, 손주 돌봄의 경우엔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은 가사 노동에서 성별 격차가 매우 큰 나라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2019년 기준 남편의 가사 노동 시간은 54분, 아내는 3시간 7분이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귀한 손주도 딱 1시간만 예쁜데...”

일본에선 ‘손주 피로(孫疲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황혼 육아가 고령자들의 행복감을 저해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에선 황혼육아가 고령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17일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가 국민연금연구원 노후보장패널조사(2005-2019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손주를 돌보고 있는 고령자의 삶의 만족도와 신체적·심리적 건강 상태는 손주가 없는 고령자에 비해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신혜리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손주 돌봄 집단은 손주 비돌봄 집단에 비해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나 건강 상태 등이 좋았다”면서 “특히 심리 상태는 최근 연도(2017~2019년)로 올수록 손주 돌봄 집단이 더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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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반대 결론을 내놓은 연구도 있다. 비슷한 수준의 우울을 갖고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손자녀를 2년 이상 돌봤던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을 비교·분석한 최미향·오혜은(2022) 연구를 보면, 손자녀 돌봄 집단의 우울감이 동일 기간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외손주를 돌보기 위해 매일 서울에서 왕복 2시간 오가는 60대 여성 A씨는 “딸과 사위가 당연히 해야 할 육아를 나한테 미루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짜증이 밀려온다”면서 “옛 말에 아이를 보느니 차라리 논에 가서 일하는 것이 낫다고 했는데, 나이 들어 손주까지 책임지려니 힘들다”고 말했다.

신혜리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손주 돌봄이 노인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일관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손자녀 돌봄 집단은 당장 우울해지거나 신체적으로 큰 타격은 없지만, 돌봄 행위가 장기간 이어지게 되면 신체적 건강과 심리적 건강(우울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