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이 전해지면서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한국 코스피가 2% 하락한 것을 비롯, 일본(-2.3%), 대만(-1.9%), 홍콩(-2.7%) 등 주요국이 모두 하락세였다.

한국 증시에선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이 전부 파란불(하락)이었다. 개인 투자자가 7700억원 가까이 매수하며 방어했지만 기관과 외국인 투매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한국 시가총액 1위 대장주인 삼성전자도 전날보다 1.7% 하락한 6만9900원에 마감했다.

그런데 이렇게 싸늘해진 증시 분위기에도, 일본 시가총액 1위(371조원) 기업인 도요타는 주가가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2일 도요타 주가는 전날보다 2.33% 오른 2502엔에 마감했다. 1949년 상장 이후 역대 최고치다. 이날 일본 대표지수인 닛케이평균은 올 들어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지만, 도요타는 오히려 장중 2549엔까지 오르면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자동차 애널리스트들이 예상한 목표 주가(2557엔)에도 바짝 다가섰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동운

일본 도요타 주식 커뮤니티에선 ‘닌자개미’(일본 개인 투자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호실적 대비 지금 (주가가) 너무 싸다, 천하의 도요타 주식은 절대 팔지 않겠다”, “도요타는 일본의 장인정신(모노즈쿠리·モノづくり)을 제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기업”이라는 찬양에서부터 “다른 주식 사려고 잠깐 팔았는데 너무 후회된다”는 반성까지 글이 넘쳐난다. 도요타 주식에 대한 닌자개미들의 평가는 ‘사고 싶다’가 75%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팔고 싶다’ 15%, ‘관망하겠다’ 10% 순이었다. 도요타는 지난 2021년 개인들의 주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30년 만에 5분의 1 액면 분할을 단행한 바 있다.

도요타 주가가 이날 사상 최고가를 찍은 비결은 탄탄한 실적 발표 때문이다. 지난 1일 도요타는 올 4~6월 분기 영업이익이 1조1209억엔(10조15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했다고 밝혔다. 시장 예상치(8803억엔)를 크게 상회한 것은 물론, 일본 기업 중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조엔을 돌파했다. 도요타는 2024 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영업이익으로 3조엔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미 한 분기 만에 목표치의 37%를 달성한 상황이다.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10조5468억엔(95조7000억)을 기록했다. 지지통신은 “반도체 수급난이 완화되면서 생산과 판매가 늘었고, 엔화 약세 효과가 더해지면서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2일 도요타가 새로 공개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랜드크루저' 신형. 랜드크루저는 도요타에서 가장 오랜기간 판매된 정통 SUV로 14년 만에 새롭게 바뀌었다. 왼쪽부터 랜드크루저 300, 70, 250./도요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는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 기업이다. 도요타는 올 상반기(1~6월)에만 541만대를 팔아 전세계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4년 연속 1등 행진이다. 한국에서도 도요타 자동차 판매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인 ‘렉서스’는 상반기에 총 1655대가 팔려,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 기준 3위를 기록했다.

이날 마침 도요타가 내년 판매 예정인 대형 SUV인 랜드크루저 신형 모델들을 공개하면서 주가는 더 탄력 받았다. 랜드크루저는 지난 1951년 경찰예비대(현 자위대)를 위해 개발된 사륜구동차를 기원으로 할 만큼 오래된 모델이다. 내년에 새로 나오는 랜드크루저 시리즈는 14년 만에 완전 변경되며, 하이브리드 차량도 나올 예정이다.

최고 실적에 사상 최고 주가, 신형 모델 공개 등의 호재가 이어지면서 이날 일본 경제 뉴스는 온통 도요타였다. 뉴스에는 “자동차 업종은 제조업이라서 고비용이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 정도 이익을 올렸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요타가 돈을 너무 많이 벌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 경쟁국에서 훼방놓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등 댓글이 있는가 하면, ”최종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은 엔저로 이익이 극대화. 하지만 그걸 지탱하는 국내 기업은 물가 상승과 고임금으로 점점 힘들어진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한편, 현대자동차 그룹은 올 상반기 세계 시장에서 365만여대를 판매해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3위였다. 판매 호조에 힘입어 분기 영업이익은 사상 처음으로 7조원을 돌파했고, 2분기 연속 상장사 영업이익 1위, 2위 자리를 지켰다. 회사 경영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은 11.2%로 도요타(10.6%)를 앞섰다.

하지만 이렇게 예상을 뛰어 넘는 화려한 깜짝 실적을 내놓아도 주가는 영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주가는 최근 한 달간 7.7% 하락했고 기아 주가는 10% 떨어졌다. 도요타는 최근 한 달간 7.7% 상승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국 증시는 2차 전지 테마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 실적이 주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