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못 일어나면 끝인데... 하루라도 빨리 연금 타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낫다.” “부부가 연금 수령자면 미리 받고 힘 있을 때 여행이나 즐기면서 살자. 한쪽이 사망하면 버리게 되는 돈이다.” “자녀 없는 독거 노인은 무조건 조기연금이 답이다. 수령하다 죽으면 국가에서 몰수한다.”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유지하려면 일찍 받아야 유리하다.”

요즘 5060 예비 은퇴자들 사이에서 조기연금 유불리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조기연금이란, 국민연금 정상수령 나이보다 최대 5년 앞당겨 받는 것을 말한다. 연금 개시 시점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기연금이 답’이란 의견과 ‘조기연금은 재앙’이라는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내가 옳다’면서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젊어서 쓰자” 연금에도 욜로

조기연금은 이른 퇴직이나 사업 부진 등으로 소득이 감소해 노후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 1999년 도입됐다. 노후 소득 보릿고개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생계 수단이지만, 1년 앞당겨 받을 때마다 연금액이 6%씩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최대 5년까지 앞당겨 받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연금액은 30% 감액된다.

가령 65세 정상 연금액으로 월 10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사람이 조기연금을 신청해서 5년 앞당겨 받는다면 70만원만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깎여 지급된 연금액 기준은 죽을 때까지 적용된다.

조기연금은 연금액이 최대 30% 줄기 때문에 노후 생활 불안을 이유로 사람들이 꺼릴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선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조기연금 기피 현상이 나타나긴커녕, 오히려 은퇴자들이 앞다퉈 조기연금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5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조기연금 수급자 수는 총 80만413명이었다. 1999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80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조기연금 신규 신청자 수는 지난 4월까지 4만5111명 늘었다. 이미 작년 1년 동안의 신청자 수(4만9671명)에 육박하고 있고,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연말엔 역대 최고치를 찍을 전망이다.

김혜진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기연금은 대부분 실직이나 사업 부진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신청하지만, 국민연금 고갈 가능성이나 다른 사회복지제도(건강보험·기초연금)의 불이익 우려가 조기 수령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신청 자격이 까다롭지 않다는 점도 조기연금 증가세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 조기연금은 10년 넘게 가입한 55세 이상 퇴직자가 일정 금액(2023년 근로+사업소득 약 286만원) 이상 벌지 않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이 같은 조기연금 증가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80만명을 돌파한 조기연금 수급자는 3년 뒤인 2026년엔 1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연금 비중 48%, 왜?

조기연금 찬성론자들은 올해 조기연금 가입자가 대폭 늘어난 것을 근거로 “2023년이 조기연금의 원년”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 4월까지 연금 개시를 신청한 사람(9만4113명) 중에서 조기연금 수급자 비중은 48%에 달한다. 통상 10% 정도였던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올해 국민연금 수령 나이가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지면서 나타난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연금 수급자가 발생하는 해에는 나타나기 어려운 수치란 설명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출생연도에 따라 지급 연령이 달라지는데 1960년생까지는 수급 연령이 만 62세(2022년부터 수령)이고 1961년생은 만 63세(2024년부터 수령)”라며 “올해는 신규 연금 수령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조기연금 신청자 비중이 일시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물론 그렇다고 해도 조기연금 수급자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 9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기준이 강화되면서 자격 인정 기준이 연 3400만원 이하에서 연 2000만원 이하로 낮아졌는데, 이런 제도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금액이 최대 30% 줄어드는 조기연금이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는 묘수(妙手)로 급부상했다는 것이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1년 예상 연금액이 2000만원 부근인 사람들 중에선 조기연금을 신청하고 적게 받아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많다”면서 “하지만 국민연금은 매년 물가상승률에 따라 금액이 늘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얼마 뒤엔 피부양자 탈락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이어 “조기연금은 소득이 일정 기준(2023년 기준 월 286만원)을 넘기면 바로 지급이 중단된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조기연금을 받다가 마음이 변하는 경우엔 본인 스스로 중단할 수도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조기연금 페널티 가혹” 불만도

노후 생활의 중심축인 연금을 언제부터 받아야 유리한지는 각자 처한 상황과 가치관, 수명 등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력상 단명이 예상된다면, 연금을 일찍 당겨 받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소득이 단절되어 정상연금을 받을 때까지 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면 역시 조기연금이 최선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연금 수령 최적 타이밍은 초미의 관심사다. ‘연금을 제때 받을까요? 앞당겨 받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인터넷에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넘쳐난다.

일본에도 정상 수령 시기(65세)보다 최대 5년 앞당겨 받을 수 있는 조기연금 제도가 있다. 온국민이 가입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일본은 전체 수급자의 11% 정도가 조기연금을 선택하고 있다<표 참고>.

일본은 한국과 비교하면 조기연금 감액 페널티가 세지 않다. 한국에서 조기연금을 받으면 최대 30% 감액되지만, 일본은 최대 24% 감액된다. 일본은 지난해 연금 수령 개시 나이를 70세에서 75세까지 늦췄는데, 이때 조기연금 감액률을 30%에서 24%로 완화했다.

⇒조기연금 논쟁(하편)에서는 ‘연금의 손익분기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