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끼리 왜 이러세요!” 아파트 단지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큰 소리부터 내게 된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현장에서 억지 부리며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다. 분명 상대방 잘못이 큰 것 같아도, 내 과실이 더 큰 경우도 있다.
헷갈리기 쉬운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 대처법, 손해보험협회에 조언을 구해 상황별 과실비율을 알아봤다. 단 구체적 과실비율은 개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도움말:유동승 손해보험협회 자동차사고 과실비율분쟁 심의위원(법무법인 청지 변호사)
1️⃣목줄 풀린 반려견, 차에 치였는데...
교통사고에서 반려동물은 대물 배상 대상이다. 현실에선 반려동물이 가족이나 다름 없지만, 법적으론 물건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집 앞에서 산책하다가 사고가 나도 반려동물 치료비를 전액 받긴 어렵다. 심지어 치료비도 교환가치(분양비 등)가 기준이 될 때가 많아서 분쟁이 잦다.
만약 운전자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려견이 차량 쪽으로 불쑥 뛰어 들어와 사고가 났다면, 차주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운전자 입장에선 사고를 예상할 수 없었고 돌발 행동을 피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자가 전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 사고 발생이나 손해 확대에 영향이 있었다면 일부 책임을 물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견주가 목줄을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운전자 과실 비율은 20%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때 목줄 착용 여부도 과실비율 판단의 사유가 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는 어떨까? 앞서 언급했듯 동물은 법적으로 물건이어서 치료비 전액을 받진 못한다. 그래도 최근 판례는 반려동물을 사람과 교감을 나누는 대상이라고 보고 보상액수를 높여주는 추세다. 또 반려동물이 다치면 보호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트라우마도 남게 되는데, 최근 판결은 정신적 위로금도 소액이나마 일부 인정해준다.
참고로 반려동물 교통사고의 경우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하는 절차는 필요하지만, 인사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경찰에 신고할 필요는 없다.
2️⃣문콕 한번에 문짝 통째로 간다는데...
비좁은 주차장에서 자동차 문을 무심코 열다가 옆차에 흠집을 낼 때가 있다. 온라인에선 ‘문콕 테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자동차 크기는 계속 커지는데 예전 주차 공간은 좁아서 생기는 일이다.
문콕 사고는 일반적으로 가해 차량 과실이 100%다. 물론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는데도 차 문을 열기 어려울 정도로 일부러 바짝 주차하는 등 특별한 경우는 예외다.
통상 문콕 사고는 문짝에 작은 흠집 내지는 눌림이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 경미한 손상이므로, 당연히 자동차 기능과 운전자 안전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따라서 손상 부위에 대한 판금·도장 작업을 진행하면 원상복구가 가능하다.
따라서 문콕 피해자가 차량 문짝을 다 바꾸겠다고 주장해도 들어줄 필요가 없다. 피해자가 마음대로 문짝을 바꿔 버린다면 ‘과잉 수리’에 해당되고 보험사에서 수리비를 감액 지급할 수도 있다. 요즘은 문콕 가해자가 “피해자가 달라는 대로 수리비를 전액 주지 말라”면서 먼저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3️⃣아파트 통로 이중주차 차량 긁었는데...
구축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협소해서 이중주차가 빈번하게 이뤄지곤 한다. ‘이중주차 차량은 주차브레이크를 채우지 말고 반드시 아침 일찍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팻말이 걸려 있는 경우도 많다.
이중주차로 인한 분쟁이 많이 발생하다 보니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이중주차 금지 표지판’을 내걸고 ‘이중주차 차량의 과실이 크다’고 안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고에 법적 효력은 없다. 도로교통법 제32조에서는 이중주차를 금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주차 차량의 과실은 통로 폭이 매우 좁아서 다른 차량이 통행하기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면 0%라고 봐야 한다. 대형 차량이 비스듬하게 주차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우지 말아야 할 곳에 차를 잘못 세웠는데 왜 과실이 하나도 없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 이중주차 차량에 과실은 없다.
이와 더불어 차를 빼려고 이중주차 차량을 손으로 밀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도 살펴보자. 1차 책임은 차를 민 사람에게 있다. 차를 밀기 전에 차량 바퀴 모양(11자인지 아닌지)과 전후방 튀어나와 있는 주차 차량은 없는지 확인하고, 내가 밀고 난 이후에 차가 완벽하게 섰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만약 내가 내 차를 빼려고 이중주차 차량을 밀다가 다른 차와 충돌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운전 중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 보험이 아니라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은 개별적으로 가입한 실손의료보험, 건강보험 등에 특약 형태로 되어 있는데, 만약 가입하지 않았다면 본인 지갑을 열어야 한다.
4️⃣주차된 차 긁은 뺑소니범 잡았는데...
“안 걸리면 그만인데...” 주·정차 차량에 사고를 낸 뒤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을 ‘물피 도주’라고 부른다. 일반인들 사이에선 ‘주차장 뺑소니’라고 부르는데 법적 용어로는 ‘사고 후 미조치’다. 이런 피해를 입었을 땐, 피해자가 객관적인 자료를 찾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 블랙박스나 주변 CCTV 등을 통해 증거를 잡아야 하고, 가해차량 운전자에게 수리비를 청구하면 된다.
시간과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실제 수리비만 갖고선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회복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남았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로금이나 위자료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방을 특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찾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엔 자차(자기차량손해담보)보험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수리비가 일정 기준 넘게 나오면 보험료는 할증된다.
5️⃣초등생이 탄 자전거와 충돌했는데...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자동차로 분류된다. 어린이가 자전거를 운전하는 경우 보도를 통행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 운전자를 보행자로 취급하진 않는다. 그래서 자동차·자전거 사고에서의 과실비율은 기본적으로 자동차·자동차 사고에 준해서 결정한다. 다만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면 자전거 운행이 능숙하지 않은 교통약자일 가능성이 있다. 자동차 운전자가 좀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의 과실이 일반적인 상황보다는 더 많이 잡힐 수는 있다.
6️⃣단지 내 횡단보도에서 사고났는데...
일반적으로 횡단보도 교통사고는 ‘12대 중과실’에 해당되어 죄가 무겁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 내에 그려져 있는 횡단보도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도 운전자 책임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 내 도로도 현실적으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나 차량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없어도 주민들이 오고 가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곳이므로, 운전자는 도로교통법상 횡단보도 수준으로 보행자 보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나면 차의 과실비율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