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도 가입할 수 있는 저렴한 어린이보험이 있는데 다음 달 단종됩니다. 월 보험료가 1만원만 싸져도 수백만원 아낄 수 있어요.”

서울에 사는 50대 주부 이모씨는 최근 보험설계사에게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졌다. 싼 보험이 없어지기 전에 가입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보험설계사는 “어린이보험은 성인보험보다 보험료는 20% 싸면서 질병 보장은 더 많이 해주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유리하다”며 “지금은 고교생도 100세 만기 어린이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일주일 뒤면 사라지니 서둘러라”며 가입을 권했다.

9월 어린이보험 제도 변경을 앞두고 ‘절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면서 소비자 혼란이 극심해지고 있다. 다음 달부터 보험사들은 어린이보험 가입 연령을 종전 0~35세에서 0~15세로 조정할 방침이다. 지난달 금융 당국이 “9월부터 가입 연령이 15세가 넘는 상품에는 ‘어린이보험’이라는 말을 붙이지 말라”고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성인 대상 보험과 어린이보험 사이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상품 설계가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저출산에도 어린이보험 44% 커져

저출산으로 젊은 세대 인구가 급속도로 줄자 보험사들은 ‘35세 성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어린이 보험’을 내세우며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벌였다. 어른도 들 수 있는 어린이보험이라며 ‘어른이보험(어른+어린이보험)’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부모와 자식이 나란히 어린이보험에 들기도 한다.

27일 보험 업계에 따르면 주요 보험사(메리츠화재·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의 작년 어린이보험 신계약 건수는 113만6888건으로 2018년보다 44%나 증가했다. 2018년은 보험사들이 어린이보험 가입연령을 30세까지로 늘리기 시작한 해다. 이후 가입 가능한 연령은 점점 높아져 현재는 상위 10개 보험사 중 7곳에서 35세까지도 어린이보험을 가입할 수 있다.

같은 기간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인 보험료는 64%나 급증했다. 합계출산율이 0.98명(2018년)에서 0.78명(2022년)이라는 사상 초유의 수치까지 떨어진 사이 오히려 보험사들의 어린이보험 가입자와 관련 수입이 늘어난 것이다.

2000년대 처음 출시된 어린이보험은 0~15세가 가입 가능한 종합보험이었다. 질병 발생 가능성이 적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기 때문에 보장 범위가 성인보다 넓고 보험료가 10~20% 저렴했다. 그러나 성인 가입자가 많아지자 성인 대상 보험과 어린이보험 사이 경계가 모호해졌다.

상당수 어린이보험에서는 어린이들이 걸릴 확률이 극히 낮은 뇌졸중·급성심근경색 같은 성인 질환 담보를 넣고 있다. 그로 인한 보험료 부담은 어린이 가입자가 나눠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행태에 문제가 있다 보고 금융 당국에서 15세까지만 어린이보험을 들도록 제동을 건 것이다.

◇'어른이보험’ 막차 타야 하나?

일명 ‘어른이보험’이 사라진다는 소식에 보험 가입자들은 혼란스럽다. 33세 직장인 홍모씨는 “아는 설계사가 이 달을 넘기면 가입하기 어렵다며 어린이보험을 들라고 하는데 이미 실손보험과 암보험으로 나가는 돈이 많아 고민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어린이보험 절판 마케팅에 넘어갈 필요가 없다고들 말한다. “어린이보험이 무조건 성인보험보다 더 좋다”도 옛말이라는 것이다.

본지가 25세 남성 가입자가 보험을 든다고 가정하고 보장이 비슷한 A보험사의 어린이보험과 성인보험을 비교했더니 오히려 어린이보험 보험료가 월 8만2000원으로 성인보험(7만8000원)보다 한 달에 4000원 더 비쌌다. 두 보험 모두 3대 질병인 암, 허혈성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진단을 받으면 각각 5000만원, 1000만원, 1000만원 보장한다. 대신 성인보험은 뇌졸중까지 납입 면제를 해주는 반면, 어린이보험은 뇌졸중보다 범위가 넓은 뇌혈관 질환에 대해 납입 면제를 해줬다. 납입 면제는 약관상 정해져있는 질병을 진단받으면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이 성인 가입자에게 어린이보험의 과거 ‘싸다’는 명성만 가지고 판매를 한 지 오래됐다”며 “어린이보험의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굳이 어린이보험과 성인보험을 구분할 필요 없이 내가 갖고 있는 보험 보장과 중복되지 않으면서 보험료가 저렴한 상품을 고르면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