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20년 차 워킹맘인 한모(48)씨는 최근 엔화 예금 계좌를 개설하고 그간 차곡차곡 모아온 목돈 1억원을 넣었다. 한씨는 은퇴 후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얼마나 받을지 수시로 계산하고, 개인연금 불입도 쉬어 본 적이 없을 만큼 ‘은퇴 재테크’에 관심이 많다. 한씨의 투자 원칙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팔자’다. 이런 한씨에게 최근 일본 엔화 가치 하락은 은퇴 자산을 불릴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올여름 일본 100엔당 원화 환율은 2015년 6월 이후 처음으로 900원 아래로 떨어졌다.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8년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 초반에는 100엔당 1170원 수준이었고,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땐 1620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10여 년간 환율 흐름을 봐도, 엔화 환율이 900원 아래로 떨어지면 대부분 곧 상승했다.

이에 국내 투자자들은 향후 엔화 가치 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노리고 엔화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국내 투자자의 엔화 예금 잔액은 약 10조9800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엔화를 비롯해 외환을 활용해 은퇴 자산을 보강하는 방안을 알아보자.

그래픽=백형선

◇외화예금 환차익은 비과세

외화 가치 상승에 따른 수익을 원한다면 외화예금에 가입할 수 있다. 외화예금이란 국내 은행에 원화가 아닌 외국 화폐로 예금하는 것이다. 통상 예금과 같은 이자가 붙을 뿐만 아니라, 외화 가치가 현재보다 상승했을 때 그에 따른 환차익을 챙길 수 있다. 외화예금에서 발생하는 이자에는 이자소득세가 부과되지만, 환율 변동에 따른 환차익은 비과세라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외화예금에 가입할 때는 ‘환전 수수료’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국내 정기예금과 비교해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투자자 A씨가 30일 연이율(세전) 4%인 1년 만기 정기예금에 1억원을 넣는다면, 1년 후 만기 시 원리금은 1억400만원이 된다. 여기서 이자소득 400만원에 대해 15.4% 소득세(지방소득세 포함)를 납부하면, 1년 수익은 약 338만원이 된다.

반면, 투자자 B씨가 이날 1억원을 엔화 예금에 넣었는데 1년 뒤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 올랐다고 가정하자. 과세가 없는 환차익 1000만원이 발생하지만, 여기에 전신환 환율을 적용한 환전 수수료(0.67%)가 빠진다. 환전 수수료는 처음 원화에서 엔화로 바꿀 때, 그리고 1년 뒤 엔화를 원화로 다시 바꿀 때 총 두 번 적용된다. 현재 국내 엔화예금의 이자율은 0%다. 결과적으로 1억원 투자에 따른 수익금은 약 853만원이 된다. 일반 정기예금에 비해 2배가 넘는 수익률을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외화 ETF, 환전 수수료 없어

또 다른 외환 투자 방법은 국내 증시에 상장된 외화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는 것이다.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하면서 환전 수수료 없이 외화에 투자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엔화에 투자하는 ETF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일본엔 선물’ 설정 잔액은 지난 5월 말 200억원 정도였으나, 3개월 만에 1200억원을 넘어섰다. 외화 ETF는 환전 수수료가 없는 장점이 있지만, ‘환차익 비과세’ 효과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선물 ETF에서 발생한 매매차익은 배당소득으로 간주돼 배당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투자자 B씨가 엔화예금 대신 ‘엔 선물 ETF’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어떨까.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10% 오른다면 차익은 1000만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ETF 운용보수 등 25만원과 트레이딩 수수료 약 40만원을 감안하면 935만원 정도가 된다. 엔선물 ETF는 배당소득이므로 15.4% 소득세(지방소득세 포함)를 내야 해서 세후 수익은 약 791만원으로 계산된다. 다만 이는 대략적인 계산이다. 운용보수와 수수료를 제대로 반영하면 실제 결과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해외 주식 직접 사도 환차익 가능

이 밖에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것도 환차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다. 해외 주식 가격은 해당 국가 화폐로 계산되므로, 주가가 횡보해도 해당 외화 가치가 상승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의하면, 지난 6월 말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보유액은 31억달러로 2011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미국(654억9000만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해외 주식 직접 투자에 따른 매매차익은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이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1년간 양도차익을 계산하고, 기본 공제 연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이 과세 대상이다. 양도소득세율은 22%(지방소득세 포함)다.

외환에 투자할 때에는 그에 따른 위험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과거 경험상 100엔당 원화 환율이 900원까지 떨어지면 상승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외환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전체 자산의 일부를 외화 자산에 배분해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다만,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나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역대급 하락이나 상승 움직임을 나타낼 때 적절히 외환 투자를 병행한다면, 장기적으로 은퇴 자산을 준비할 때 수익원을 보강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