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

국내 투자자들이 보유한 일본 주식 가치가 9년 반 만에 처음으로 중국(홍콩 포함)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가 지난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1.5%(연율로는 6.0%)의 깜짝 성장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는 반면, 중국 경제는 미·중 갈등과 부동산업체들의 부실 여파로 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 보유액은 34억3649만달러(약 4조5276억원)로 중국 주식 보유액(31억2197만달러)을 추월했다. 올해 1월만 해도 중국 주식 보유액이 44억2278만달러로, 일본 주식(28억4398만달러)을 넉넉히 앞섰다. 하지만 중국의 코로나 봉쇄 이후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효과가 신통치 않았던 데다 부동산발(發) 경제 위기 우려까지 겹치며 중국 주식 보유액이 7개월간 30% 급감했다. 주식 보유액 기준으로 일학개미(일본 주식을 사는 국내 투자자)가 중학개미를 넘어선 것은 2014년 1월 이후 처음이다.

그래픽=김성규

◇9년 반 만에 일학개미가 중학개미 역전

중학개미들이 중국 주식을 팔아치운 것은 중국 경제의 부진이 각종 지표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매판매 증가율은 4월 18.4%에서 7월 2.5%로 줄었고, 같은 기간 산업생산 증가율도 5.6%에서 3.7%로 감소했다. 6월 청년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중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중학개미들은 중국 주식을 앞다퉈 팔아치웠다. 1월(977만달러)을 제외하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중학개미들은 매달 중국 주식을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했다.

반면 올해 초부터 저금리와 엔화 약세를 발판으로 일본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국내 투자자의 일본 주식투자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5월 100엔당 원화 환율이 평균 969원에서 6월 917원으로 급락하는 등 원화 대비 엔화 가치가 ‘역대급’으로 떨어지자 국내 투자자들의 일본 투자가 급격히 늘었다.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익은 물론 환차익까지 노리는 투자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올해 2월 전달 대비 0.2% 증가에 그쳤던 일학개미의 주식 보유액은 6월과 7월엔 각각 6%, 10% 늘었다.

◇중국은 위기 우려 여전, 일본은 기업 실적 개선세

지난달 25일 3060선까지 내렸던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당국이 증권거래세를 내리는 등 잇따른 증시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3170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중국 1위 부동산 개발회사 비구이위안이 앞으로 막아야 할 채권 총액이 157억위안(약 2조8600억원)에 달하는 등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여전하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약화됐고 수요도 침체된 상태이기 때문에 비구이위안 디폴트 위기의 파급력은 더욱 클 것”이라면서 “디폴트에 대한 여진이 지속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가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중국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경제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기 때문에 투자 심리가 살아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일본 증시는 기업 실적 개선세가 지속하면서 당분간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채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실적 반등에 대한 기대와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 지속 등으로 올해 일본 증시는 상승 여력이 있다”면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증가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속속 등장하는 점도 일학개미가 늘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다. 개인이 일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경우 한 번에 100주씩 거래해야 해 부담이 큰데, ETF를 통한 간접투자 상품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일본 주식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자산운용은 최근 일본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에 투자하는 ETF를 출시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일본 반도체 ETF도 조만간 상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