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7년까지 기업 대출을 30조원 늘려 기업 대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겠다.”

지난 7일 우리은행은 ‘기업 금융 명가 재건을 위한 전략 발표회’를 열고 이처럼 밝혔다. 현재 우리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135조7000억원으로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점유율이 가장 낮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 대출에 사활을 걸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현재 50 대 50 수준인 기업 대출과 가계 대출 비율도 2026년 말까지 60 대 40으로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기업 대출을 강화하는 곳은 우리은행뿐이 아니다. 최근 금융 당국이 가계 대출 급증세의 고삐를 강하게 조이자 은행들이 기업 대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기업 대출은 가계 대출 대비 규제가 덜할 뿐 아니라, 회사채 발행 금리가 오르자 기업들이 은행을 찾는 발길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내외 경제 상황이 나빠진다면 취약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출 상환 부담이 커져 은행 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기업 대출 전년보다 8.7% 늘어

실제 은행의 기업 대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747조489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687조4233억원)보다 60조661억원(8.7%) 증가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 대출 잔액은 696조4509억원에서 680조8120억원으로 15조6389억원(2.2%) 줄었다.

1년 전만 해도 5대 시중 은행의 가계 대출은 기업 대출보다 많았지만, 지난해 10월 기업 대출이 가계 대출을 역전했다. 이후 지난달까지 기업 대출 규모가 꾸준히 증가해 가계 대출과 격차를 벌려나가고 있다. 8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기업 대출은 가계 대출보다 약 67조원 많다.

◇은행-기업의 필요 맞물려

이런 증가세는 대출을 내주는 은행과 자금이 필요한 기업의 상황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은행은 최근 금융 당국의 가계 대출 관리 강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최근 대출이 많이 증가한 부문을 중심으로 은행권의 대출 태도가 느슨한 부분은 없는지 중점 점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채권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은행을 찾는 기업도 늘어났다.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은 줄이고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9월 통화 신용 정책 보고서’에서 “올 들어 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지속적으로 확대됐는데, 기업들이 필요한 영업 자금을 회사채 발행보다은 대출로 주로 충당했다”고 분석했다. 회사채 발행 금리가 2분기(4~6월) 상승 전환하며 은행 대출 대비 ‘금리 이점’이 상당히 작아졌다는 것이다.

정광명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회사채 발행이 부진하며 기업들의 대출 수요가 큰 가운데 은행도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연체율이 낮은 대기업 대출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출혈 경쟁에 건전성 훼손 우려도

한편에선 기업 대출 경쟁이 과열되면 은행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당장 은행의 기업 대출 금리가 낮아지는 건 기업들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취약 기업들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위험도 있다는 것이다.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내수 회복이 더뎌진다면 한계 기업(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를 다 갚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은행의 기업 대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낮아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지난 5~7월 중소기업에 내준 신용 대출 금리는 연 5.49~6.57%를 기록했다. 6개월 전 금리에 비해 금리 상단이 0.46%포인트, 하단이 0.24%포인트 떨어졌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1일 회의에서 “코로나 대응과정에서 지속된 저금리 기조와 완화된 금융 환경 등으로 기업의 잠재 리스크가 누적된 가운데 최근 생산 비용 증가, 고금리와 긴축적 금융 환경 등으로 여건이 변화하면서 한계 기업의 신용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