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채 1년물 금리가 8개월 만에 연 4%를 돌파하는 등 채권 금리가 다시 오르면서 시장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었던 ‘11월의 악몽’ 재현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당시 채권시장은 금리가 치솟고 유동성이 줄어들어, 기업들은 자금 줄이 막히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에 다시 은행채 발행이 늘면서 지난해 같은 상황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만큼의 큰 혼돈이 올 가능성은 낮다고 보면서도, 초우량채인 은행채로 수요가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성규

◇8개월 만에 4% 돌파한 은행채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은행채(무보증·AAA) 1년물 금리는 연 4.023%로 집계됐다.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해 11월 연 5%대를 기록한 뒤, 올해 1월 중순 연 3%대로 떨어졌다. 이후 계속 연 3%대에서 움직이다 최근 8개월 만에 다시 연 4%대로 올라선 것이다.

일반적으로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데, 은행채 발행이 늘면 금리가 오르고 가격은 떨어진다. 은행채 발행 물량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시중은행들이 발행하는 채권의 신용 등급은 AAA로 초우량채라, 투자자들의 수요가 은행채로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은행의 CD(양도성 예금증서) 발행 금리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19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주 경남은행과 전북은행이 364일물 CD를 각각 4.2%, 4.21%에 발행했다. CD 발행 시장에서 4.2%대 금리가 등장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라고 채권시장 관계자는 말한다.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금리도 4%에 육박하고 있다. 기업은행이 지난 18일 발행한 361일물 CD는 금리 3.99%를 기록했다.

그래픽=김성규

◇은행채 쏠림 현상 재연 우려

채권시장에서 은행채는 올해 8월 들어 상환보다 발행이 많은 순발행 기조로 돌아섰다. 올해 은행채는 순발행액 9595억원을 기록한 5월을 제외하고는 줄곧 순상환 기조를 이어왔다. 하지만 8월 순발행액이 3조 7794억원으로 증가 전환했다. 월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9월 7조4600억원어치 순발행 후 최대 기록이다. 은행채는 9월에도 순발행을 기록 중이다.

은행채 발행이 느는 것은 은행의 자금 조달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작년 하반기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출시한 특판 예적금 중 만기 1년인 상품의 만기가 본격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9~11월에 불어난 금융회사 정기예금은 116조4000억원에 이른다.

최근 주택 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대출 수요 증가도 은행채 발행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초장기 주택 담보대출 판매 등으로 가계 부채가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가계 대출을 포함한 대출 수요 증가에 은행이 자금을 마련할 필요가 늘어난 것이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사태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예금 만기가 대거 도래해 서민 금융기관을 포함한 은행권 전반의 수신 환경과 은행채 발행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채권 시장 불안감 커지나

은행채 발행 증가세를 두고 과열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은행채 발행 증가는 신용 공급이라는 차원에서 금융시장, 크레디트(회사채) 시장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해왔지만 최근 들어 과열 양상”이라며 “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초우량채인 은행채 발행 증가로 상대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은 회사채·여전채 시장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카드사들은 만기가 긴 채권 발행은 줄이고, 만기가 짧은 전자 단기 사채(전단채) 발행은 늘리는 분위기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기준 카드사의 만기 1년 미만의 전단채 발행 금액은 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1월(3600억원)보다 500억원 늘어났다.

국내외 투자자들도 채권시장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투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가 국내 증시는 타격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