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코스닥 시가총액 7위 바이오 기업 HLB가 유가증권시장(코스피)으로 이전 상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서 8월 코스피 이전을 결정한 코스닥 시총 4위 포스코DX와 엘앤에프(시가총액 5위), 그리고 코스피 상장사 셀트리온과 합병을 추진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시총 3위)까지 포함하면 코스닥 시가총액 톱 10 기업 중 4곳이 한꺼번에 코스피로 짐을 싸는 것이다. 이들은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의 7%(28조원)가량을 차지한다.

선두 기업들이 줄줄이 떠난다는 소식에 코스닥 시장은 기운이 빠진 모양새다. 자칫 ‘코스닥은 코스피의 2부 리그’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악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20년 만 탈(脫)코스닥 최다 될까

코스닥에서 몸집을 키운 알짜 기업들의 코스피 이전은 해마다 반복된다. 대표적으로 과거 NHN(2008년), 카카오(2017년), 셀트리온(2018년) 등이 코스피로 이동했다. 올 들어선 SK오션플랜트(옛 삼강엠앤티)·비에이치·NICE평가정보 등 3곳이 코스피로 무대를 옮겼다. 현재 코스피로 이전을 추진 중인 포스코DX, 엘앤에프, HLB까지 연내에 옮겨 가면 2003년(6건) 이후 연간 최다 이탈 기록이 된다.

우량 기업들이 코스닥을 떠나려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기업 이미지 개선이다. 코스닥 상장사에 대한 저평가를 뜻하는 이른바 ‘코스닥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코스닥 기업의 경우 주가조작 시도에 취약한 데다 임직원들의 횡령·배임 사고 등도 잦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시의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의 74%가 코스닥에서 발생했다. 이런 이유로 코스닥 기업엔 아예 투자하지 않는 기관 투자자도 있다. 올해 코스닥의 외국인 투자자 비율은 8.6%에 불과하다.

그래픽=양진경

코스피는 경영 성과나 공시·내부 통제 등 상장 심사가 코스닥보다 훨씬 까다롭다. 그래서 코스피에 진입하면 대외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에 편입될 경우 대형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기도 한다.

공매도 리스크도 탈코스닥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현재 공매도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구성 종목에만 허용된다. 코스닥에선 덩치가 커 공매도 공세를 받지만 코스피로 이전했을 때 시가총액 200위 안에 들지 않는다면 공매도 공세를 피할 수 있다. 코스피 이전을 추진 중인 엘앤에프는 시가총액 대비 공매도 잔액 비율이 7.2%로 코스닥에서 셋째로 높고, HLB도 다섯째(6.7%)나 된다.

◇코스피 이전, 장밋빛만은 아냐

코스피 이전 상장이 대체로 주가에 긍정적이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2021년 이후 코스피로 이사한 기업 6곳(엠씨넥스, PI첨단소재, LX세미콘, SK오션플랜트, 비에이치, NICE평가정보)은 모두 코스피 이전 상장 첫날보다 현재 주가가 하락했다. 코스피 이전 소식이 ‘반짝’ 호재가 될 수 있지만 결국 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중요한 것이다.

예컨대 포스코DX는 8월 23일 코스피 이전 상장 계획을 공시한 후 한 달 만에 주가가 37.9% 뛴 반면,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엘앤에프는 8월 28일 이전 상장 추진을 공식화한 후 한 달 새 주가가 27% 하락했다.

그래픽=양진경

◇코스닥 저평가 해소가 과제

일각에선 코스피 이전 상장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하거나 코스닥 기업에 법인세 인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대형주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은 코스닥 기업들의 서운한 마음은 알겠으나 코스피 이전 여부는 기업의 선택권”이라고 했다.

이부연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본부장보도 “코스닥 시장 자체의 매력도를 높여 기업들에 잔류 유인을 제공하는 게 우선”이라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코스닥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거래소는 작년 11월 코스닥 우수 상장사 51곳을 선별한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를 출범시켜 편입 기업 위상 높이기에 나섰다. 이 기업들 주가를 추종하는 ‘코스닥 글로벌 지수’가 만들어졌고, 매년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IR)도 개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