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출시됐던 고금리 정기예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이 자금을 유치하려는 은행권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작년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 유동성(자금 흐름)이 줄어들자 주요 은행과 저축은행들은 자금 확보를 위해 금리가 연 4~5%대인 1년 만기 특판 예적금을 출시했었다.

그래픽=이지원

은행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다시 고금리 상품을 출시해 자금을 재유치하거나, 은행채를 발행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이 고금리 상품을 많이 내놓을 경우 시중 자금이 저축은행 같은 제2 금융권에서 이탈해 은행권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금융 당국은 은행채 발행 한도 규제를 폐지하는 비상 대응책을 내놨다. 과도한 은행 쏠림으로 제2 금융권이 자금 부족 현상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4% 예금 등장하고 은행채도 두 달째 순발행

올 들어 정기예금 금리를 연 3%대로 유지해 오던 시중은행들은 지난주부터 금리를 속속 4%대로 올리기 시작했다. 주요 은행 정기예금 최고 금리가 4%대를 넘어선 것은 약 9개월 만이다.

3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KB Star 정기예금’과 우리은행의 ‘WON플러스 예금’은 각각 연 최고 4.05%의 금리를 제공하고,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은 연 최고 4.03%를 준다. 하나은행 ‘하나의 정기예금’과 농협은행의 ‘NH올원e예금’은 각각 연 최고 3.9%, 3.85%로 연 4%에 육박한다.

은행들은 은행채도 적극적으로 발행하고 있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는 약 7조3000억원 순발행됐다. 순발행은 채권 발행 규모가 상환 규모보다 많은 상태다.

올해 은행채는 순발행액 9595억원을 기록한 5월을 제외하고는 줄곧 순상환 기조를 이어왔다. 하지만 8월에 순발행액이 3조7794억원으로 증가세로 전환된 데 이어 9월에는 순발행 규모가 더욱 커진 것이다.

◇금융 당국,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

금융 당국은 시중은행의 은행채 발행 한도 제한을 사실상 없애기로 했다. 은행채 발행을 제한할 경우 작년처럼 과도한 수신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은행채 발행 한도는 3분기까지는 만기가 된 물량의 125%까지로 제한됐었다. 금융위원회는 작년 말 레고랜드 사태 이후 채권 시장이 얼어붙자 은행채 발행을 사실상 중단시켰다. 채권 자금이 은행채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후 월별 만기 도래 물량의 100~125%, 분기별 만기 도래액의 125% 등으로 차츰 발행 한도를 풀어줬다. 하지만 오는 4분기부터는 아예 한도를 풀기로 한 것이다.

또 금융 당국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도 현 95% 수준으로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LCR은 30일간 예상되는 순 현금 유출액 대비 고유동성 자산 비율인데, 이 숫자가 낮을수록 은행들은 자금을 조달하기 쉬워진다. 코로나 당시 LCR은 85%였다. 내년부터 97.5%로 올릴 예정이었으나, 금융 당국은 일단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은행들은 이번 조치로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릴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채권 시장의 자금이 초우량 채권인 은행채로 쏠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작년 은행이 채권 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여 일부 증권사와 저축은행들이 자금난을 겪은 것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