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최모(40)씨는 연초부터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조금씩 사 모으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판단에서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그래서 금리 인상기가 끝나고 금리가 떨어진다면 채권 가격은 올라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최씨의 예상과 달리 미 국채 금리는 최근 연일 2007년 이후 16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최씨는 “이미 10% 이상 손해를 봤는데, 금리가 더 오를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씨처럼 미국의 긴축 정책이 조만간 끝날 것에 ‘베팅’해 미 국채 ETF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고금리 환경이 지속하면서 ETF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자 시름에 빠졌다.

그래픽=김현국

◇서학개미 몰렸던 미 국채 ETF

4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한 해외 주식 10종목 중 4종목이 미 국채 관련 ETF였다. 순매수 1위는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 국채 불 3X ETF’(TMF)로 국내 투자자들은 이 ETF를 3억8810만달러(약 5282억원)치를 순매수했다. TMF는 만기가 20년 이상인 미 국채로 구성된 ‘ICE US 20년 이상 미 국채 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3배로 좇는 ETF이다. TMF 가격은 연초 8달러 선에서 시작해 1월 중순 9.7달러 선까지 올랐지만, 미 국채 금리가 상승세를 타면서 최근 4.3달러까지 내렸다. 연초 이후 46.5%, 하반기 들어서만 44.9% 하락했다. 보통 기관투자자들은 레버리지 ETF로 채권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인 ‘서학개미’들이 TMF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국내 투자자 해외 주식 순매수 3위에 오른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엔화 헤지 ETF’도 하반기 들어 13% 하락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이 ETF는 국채 금리 하락으로 인한 가격 상승에다 ‘역대급’ 엔저(低)로 인한 환차익까지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는 국내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순매수 7위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커버드콜 ETF’와 10위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국 국채 ETF’도 하반기 들어 각각 18%, 17% 내렸다.

◇”미 금리 더 오를 수도” 주의보

미 국채 ETF 투자자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미 국채 금리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공동창업자로 월가에서 ‘원조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는 미국 경제방송 CNBC에 출연, “국채 금리가 단기적으로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면서 “5%까지 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로스에 이어 ‘신(新)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도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미국 경제에 주요 난관이 됐다”면서 “국채 금리가 5%를 넘으면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최근 들어 미국 기준금리가 연 7%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고를 연거푸 내놓고 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25~5.5%이다.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미 국채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는 데다 연준이 연내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에 TMF의 반대 성격인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 국채 베어 3X ETF’(TMV)에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나온다. TMV는 미 국채 지수의 수익률을 거꾸로 3배 좇는 상품으로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 수익을 내는 ETF다. 하반기 들어서 TMV는 70% 이상 급등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은 미국 국채 금리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미 국채 관련 ETF에 투자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장기채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는 등 변동성이 커서 투자 시점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이 장기물에 비해 적은 단기물 투자를 추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