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고금리발(發) 충격이 글로벌 금융 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개인 투자자 자금이 1조원 넘게 묶여 있는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도 비상이 걸렸다.

그래픽=백형선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2018년 즈음 연 6~8%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매력적 투자처로 각광받으며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작년 들어 미국 등 주요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더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들어가면서 잇달아 수십 %대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부동산 펀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파생형)’는 빌딩 가치 하락으로 최근 1년 수익률이 -82.4%를 찍었다. 한국투자리얼에셋이 벨기에 브뤼셀 빌딩에 투자한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도 같은 기간 29.8% 손실을 냈다.

그래픽=백형선

4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이후 개인에게 판매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14개로 판매액은 1조478억원, 개인 투자자는 2만7187명에 달한다. 또,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이 공개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해외 부동산 펀드의 투자는 미국(58%)과 유럽(23%)에 집중됐다.

증권사·보험사 등 기관 투자자는 해외 부동산에서 부실이 발생해도 자체 보유 자산이 많은 데다 다른 투자자에게 쪼개서 다시 파는 셀다운(Sell Down·인수 후 재매각) 등의 방식으로 손실에 대응할 수 있는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어 손실 충격이 더 클 전망이다. 런던, 시드니, 상하이, 홍콩 등 대도시 오피스 공실률은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기록했던 직전 최고인 13% 수준까지 근접했다.

◇투자자 절반이 내년 만기 도래

해외 부동산 펀드는 일정 기간 돈을 묶어 놔야 한다. 그래서 공모펀드인데도 만기가 있다. 펀드가 안정적으로 투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펀드 만기가 내년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내년 만기인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의 금액(4104억원)이나 개인 투자자(1만965명)가 연간 기준으로 가장 많다. 특히 2018년 이후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의 절반가량이 내년에 펀드 만기를 맞는다.

윤창현 의원은 “해외 부동산의 1순위 채권자는 현지 은행이고, 국내 자산운용사의 공모펀드는 후순위 채권자”라며 “LTV(주택담보대출비율) 60% 건물이 20% 가격 하락시 공모펀드의 손실률은 50%에 이르는 만큼 제2의 펀드사태를 예방하는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해외 부동산 시장의 불황 전망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재택근무가 확산한 탓에 글로벌 대도시의 오피스 공실률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2018년 12.1%였던 미국의 오피스 공실률은 올해 1분기 16.1% 수준까지 뛰었다.

부동산 펀드 운용사들은 만기를 앞두고 제값에 부동산을 팔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이지스자산운용 등은 투자자 총회를 소집해 펀드 만기 연장을 추진하기도 한다. 만기를 연장해 2년가량 시간을 벌어 그 사이 부동산 가격이 정상화되면 제값에 팔아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구상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현지 금융사가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시나리오도 걱정”이라고 했다. 해외 부동산 펀드는 대부분 부동산 매입가의 60~65%를 현지 대출로 조달했다. 그런데 부동산 평가액이 떨어지면 현지 금융사들이 대출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줄어든 담보 가치만큼 대출금을 회수하려 들 수 있다.

◇금융당국 “시스템 위험 안 커”

증권가 일각에선 가칭 ‘리파이낸싱(재융자) 펀드’를 조성해 부동산 펀드 운용사들이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도와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부실 확대를 막기 위해 전 금융권이 공동으로 대주단(貸主團) 협의체를 만든 것처럼 정책적 구제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신중하다. 자기 책임 투자의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지금 상황에선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8월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액이 75조원가량인데 그중 96% 이상이 기관·법인 투자자이고 개인 공모펀드는 만기가 분산돼 있다”며 “내년에 (부동산) 시장 상황이 바뀌면, 전부 다 손실을 본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사무용 빌딩에 투자한 펀드는 당분간 어려움을 겪겠지만 호텔이나 창고 등을 자산으로 보유한 상품들은 코로나 이후 업황이 살아나면서 수익률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며 “해외 부동산 펀드가 담고 있는 자산에 따라 희비가 갈릴 수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국회의 요구에도 금감원이 해외 부동산 펀드 수익률 정보 등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외신에서도 국내 해외 부동산 펀드 문제에 크게 우려하고 있는 만큼 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