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내 급여가 오르긴 힘들 텐데...”

50대 만년 부장인데 문득 회사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이때가 바로 퇴직연금을 점검할 타이밍이다. 급여가 싹둑 잘리는 임금피크제 진입이 코앞인 장기 근속자라면 더욱 그렇다. 퇴직연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은퇴 후 받는 돈은 확연히 차이 나고, 삶의 질도 달라진다.

연금 전문가들은 “은퇴에 임박해서 퇴직금을 보며 후회해봤자 시간을 돌이킬 순 없다”면서 “나중에 어떻게 사용하든, 현역에 있을 때 퇴직금을 최대한 많이 쌓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생의 절반을 산 50대가 꼭 알아야 할 ‘퇴직금 리터러시(문해력)’에 대해 알아봤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퇴직금 각자도생 시대 열린다

“퇴직연금? 난 아무 것도 몰라...“

내 퇴직연금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잘 모르는 직장인들이 수두룩하다. 퇴직연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회사가 알아서 굴려주는 확정급여형(DB)과 내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이 그것이다. 회사 다니면서 퇴직금 운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면 DB일 가능성이 높다.

승진 기회가 많고 임금 상승률도 높으면서 장기 근속까지 가능하다면 DB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회사 다닐 날보다 다닌 날이 길어진 50대 만년 부장이라면 계산기를 두드리고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 DB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보다는 DC로 갈아타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은 퇴직 이전 30일 평균임금에 계속근로기간을 곱한 값이다. 가령 만 55세인 김 부장이 현 직장에서 20년간 계속 일했고 최근 30일 평균임금(퇴직 직전 3개월 급여를 근무일수로 나눈 값)이 500만원인 경우를 가정해 보자. 지금 당장 김 부장이 회사를 떠나면 받게 될 퇴직금은 1억원(500만원ⅹ20년)이다.

그런데 만약 김 부장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갔고 만 60세 시점의 30일 평균임금이 250만원이라면 퇴직금은 6250만원(250만원ⅹ25년)으로 쪼그라든다. 더 오래 일했는데도 퇴직금은 줄어드는 비참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김 부장이 미래의 불행을 피하려면, 퇴직금 운용 체계 갈아타기가 필수다. 마치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는 것처럼, 임금이 정점에 달했다고 생각될 때 DB에서 DC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DB에서 DC로 전환하면 퇴직금이 중간정산(김 부장 경우엔 1억원)되어서 본인 명의 계좌에 입금된다. 내 이름으로 된 계좌이지만 퇴직금이기 때문에 몇 가지 예외 사항을 빼면 중도 인출은 불가능하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DC 고금리 특판, 내달 사라질 듯

회사가 책임을 지는 DB는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로, 아직은 DC(26%)보다 훨씬 높다. 평생 퇴직금 운용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DC 가입자가 되어 직접 퇴직금을 운용해야 한다고 하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과거와 같은 1%대 초저금리 시대엔 DB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고금리 시대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임금상승률이 정체된 50대 부장이라면 DC가 오히려 더 기회일 수 있다. 투자에 대해 전혀 몰라도 DC에서 굴릴 수 있는 원금 보장형 상품 금리가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50대 이모씨는 지난 주 퇴직연금을 DB에서 DC로 갈아탔는데, 상품 리스트에 나와 있는 금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씨는 “원금 보장형 상품인데 금리가 연 6%이고 5년 장기로 가입하는 것도 가능해서 따져보니 총 30%였다”면서 “DB에 그냥 있었으면 연 2% 임금상승률만 적용되었을 텐데, DC로 바꿔서 퇴직금 운용 수익이 3배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대형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담당자는 “퇴직연금 시장이 커지면서 DC 유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면서 “신규고객 유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특판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DB에서 DC로 갈아탄 고객에게 3년, 5년 만기 원금보장형 상품 금리로 각각 연 5.85%, 연 6%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5년 장기 수익률이 연환산 1.5%이니까, 연 6%면 상당하다.

하지만 이런 꿀금리 상품은 다음 달부터는 사라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마진을 포기하면서 고금리 특판 상품을 파는 것은 과하다고 보고 다음 달부터 규제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부 금융회사들이 웃돈(수수료 1~1.5%)을 주고 고금리 상품을 떼어 와서 판매하는 관행이 있다”면서 “퇴직연금 시장 정상화를 위해 이런 관행이 없어지도록 조만간 손볼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험사 퇴직연금 담당 관계자는 “(내가) 퇴직연금 업무만 10년을 해왔는데 원금보장형이면서 이런 높은 금리는 처음 봤다”면서 “규제가 시행되면, 지금과 같은 연 6% 고금리 상품은 보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상 이달 나온 고금리 특판 상품들이 막차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가계부채가 많아서 금리를 미국처럼 대폭 올리긴 어렵잖아요. 현재 금리가 고점 근처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판매하는 고금리 특판은 심지어 회사들이 손해 보면서 판매하는 것이니 소비자 입장에선 여러모로 유리하죠. 지금 시점엔 가급적 장기 고금리로 묶어두는 걸 추천합니다.”

다만 DB에서 DC로 일단 갈아타면, 다시 DB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예금 만기가 긴데 만기 전에 퇴사하는 경우, 중도해지 손해는 없고 퇴사일까지 일할 계산해서 약속된 금리로 상환된다.

참고로 고금리 특판 상품은 금융회사 퇴직연금 앱에 공개되지 않는다. DC 전환을 결심했다면 회사 내 퇴직연금 사업자에게 연락해서 따로 물어봐야 한다. 이미 DC에 가입 중이라고 해도 사업자를 갈아타면 신규 가입자가 되기 때문에 특판 고금리를 챙길 수 있다. DC 가입자는 이 참에 퇴직연금 성과를 확인해 보고, 부실하다면 사업자 갈아타기를 고려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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