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I서울보증보험 본사 전경./뉴스1

고금리 장기화 우려에 따른 투자 심리 위축에 기업공개(IPO)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최소 3조원이 넘는 몸값으로 주목받으며 IPO시장의 대어(大魚)로 꼽히던 서울보증보험이 예상보다 부진한 수요 예측에 23일 상장결정을 철회하면서 IPO 시장에 힘이 빠진 모양새다.

뒤이어 IPO를 준비하던 기업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중동 지역 불안으로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운 환경이 된 데다, 서울보증보험의 상장 포기로 기관 투자자들의 IPO 투자 심리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IPO 시장에 작년 같은 빙하기가 다시 찾아올지 투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백기 든 서울보증보험

당초 서울보증보험은 지난 13~19일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마치고 이달 말 일반청약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수요 예측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면서 끝내 상장을 포기했다. 서울보증은 23일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을 고려해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 신고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수요 예측에 참여한 기관 대부분이 희망 공모가 범위 하단에 가까운 금액에 주문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환경이 변수가 됐다. 지난 7일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으로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연 5% 돌파한 이후, 투자 심리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코스피는 7개월 만에 2400선이 깨졌다.

여기에 서울보증보험의 특수한 공모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기업공개는 최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가진 주식을 매각하는 100% 구주 매출로 진행되는 데다 6개월 뒤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 있다는 오버행(대량 대기 매물) 우려도 흥행에 걸림돌이 됐다. 고금리가 보험사 수익 감소로 이어져 고배당을 실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도 참패 요인으로 꼽혔다

◇미국·유럽 IPO 시장도 ‘찬바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IPO 시장에 찬바람이 불기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선 이달 초, 1주일 사이 3개 기업이 IPO를 철회하거나 연기해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고금리, 고물가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여파다. 프랑스 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업체 플라니스웨어가 지난 11일 상장 예정일을 불과 5일 남겨두고 상장을 철회했다. 독일 방산 기업 렝크도 지난 4일 IPO 철회를 선언했다. 이달 증시에 데뷔할 예정이었던 독일 통행료 지불 서비스 제공 업체 DKV모빌리티는 지난 10일 상장을 내년으로 미뤘다.

미국 IPO 시장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9월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한 영국의 반도체 업체 ARM과 미국 식료품 배송 업체 인스타카트 주가는 현재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침체에 빠진 유럽 대신 뉴욕 증시를 택했던 독일 샌들업체 버켄스탁은 상장 첫날인 지난 11일 공모가보다 13% 낮은 가격에 거래를 마치며 체면을 구겼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 기업들은 기존 주식(구주)을 매각하거나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자금을 융통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22일(현지 시각) “버켄스탁 등 공모 실패 사례가 쌓이면서 미국 내 IPO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분위기 반전 꾀할 수 있을까

시장의 관심은 이달 말 수요 예측이 예정된 에코프로머티리얼즈에 쏠리고 있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전구체를 생산하는 업체로, 에코프로 그룹주 가운데 처음으로 내달 유가증권시장에 데뷔한다. 예상 시가총액은 희망 공모가 상단 기준으로 3조원을 넘는다.

대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테슬라의 3분기 실적 충격으로 국내 이차전지주 주가가 연일 약세를 보이면서 제값을 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도 부담이다. 일반 청약에서 33조원을 끌어모으며 흥행한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5일 상장 첫날 종가 대비 주가가 30%나 빠졌다. 지난 7월 상장한 버넥트 주가는 공모가(1만6000원) 대비 48%나 떨어졌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수요 예측 결과에 따라 연말 IPO 시장 분위기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달 말까지 에이직랜드, 에스와이스틸텍, 에이텀, 캡스톤파트너스 등 기업들이 IPO를 위한 수요 예측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