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금리 급등 등 악재로 신음하던 코스피가 26일 2300선이 무너졌다.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부진 여파로 25일(현지 시각) 나스닥 지수가 급락세를 보인 데다, 반도체주 부진과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 등으로 인한 이차전지주 급락 등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2.7% 내린 2299.08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가 2300선 밑으로 내려간 것은 연초 이후 9개월 만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4700억원어치 넘게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종목 중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소폭(0.97%) 오른 것을 제외하면 모두 하락했다. 코스닥지수도 3.5% 급락한 743.85를 기록했다.
◇미국 빅테크 하락에 투자 심리 얼어붙어
25일 뉴욕 증시에서 S&P500 지수가 1.4%, 나스닥지수가 2.4% 하락하면서 국내 증시에선 26일 개장 전부터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뉴욕 증시 주요 지수를 끌어내린 것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었다. 알파벳 주가는 이날 9.5% 폭락했다. 전날 알파벳은 3분기(7~9월) 실적을 발표했는데, 3분기 매출과 주당순이익(EPS)은 각각 766억9000만달러(약 103조3397억원), 1.55달러(2088원)로 시장조사 기관 LSEG가 집계한 월가 예상 759억7000만달러, 1.45달러를 웃돌았다. 하지만 부진한 클라우드 매출이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알파벳의 3분기 클라우드 매출은 84억1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2% 증가했지만, 시장 예상인 86억4000만달러에는 미치지 못했다. 클라우드 사업은 구글이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를 따라잡기 위한 핵심 투자 분야다.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많은 기업이 거대 기술 기업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에 눈을 돌리면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알파벳 주가 폭락의 원인은 그간 기대감이 컸던 AI 사업 부문에서 실망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파벳 외에도 애플(-1.4%), 아마존(-5.6%), 엔비디아(-4.3%), AMD(-5.5%), 메타(-4.2%)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도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차전지·반도체주도 급락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로 이차전지주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도 지수 하락을 부추겼다. 지난 18일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시장의 기대를 밑도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폭풍이 몰아치는 경제 조건 속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 있다”면서 전기차 수요 위축을 우려했다. 제너럴모터스(GM)가 전기차 생산량을 줄일 것이란 소식도 악재였다. 2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GM은 작년 중반부터 내년 중반까지 2년간 4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폐기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GM이 전기차 생산 목표를 크게 하향하면서 합작회사 형태로 미국에 진출한 국내 업체에 직접적인 충격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선 LG에너지솔루션 주가가 1.8% 내린 것을 비롯해 포스코홀딩스(-6.6%), LG화학(-6.6%)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내렸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에코프로비엠(-5.6%), 에코프로(-8.8%), 엘앤에프(-7.0%) 등 이차전지주가 급락세를 보였다.
반도체주도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날 SK하이닉스 주가는 전날보다 5.9% 급락했고, 삼성전자는 1.9% 하락했다.
이선균, 지드래곤 등 여러 연예인이 마약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엔터테인먼트 업종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 붙으면서 주가가 동반 급락세를 보였다. 하이브가 10.7% 하락한 것을 비롯해 YG엔터테인먼트(-7.9%), SM(-5.1%), JYP(-6.2%) 등이 줄줄이 하락세를 보였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3개월 연속으로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다”면서 “반도체·이차전지 등 주력 업종의 주가 하락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