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에서 연 10%대의 적금이 등장하는 등 예금 유치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금융 당국이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10개 은행 부행장이 참석한 ‘은행권 자금 조달·운용 간담회’에서 “시장금리 상승 폭을 초과하는 과도한 수신 경쟁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너무 높이면 대출 금리도 덩달아 올라 서민들의 ‘빚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고, 2금융권의 자금 조달도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치열해지는 고금리 예·적금 경쟁

은행들은 하반기 들어 정기예금 금리를 꾸준히 올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신규 예금액 기준 시중은행의 지난달 평균 정기예금 금리는 연 3.74%다. 지난 5월 연 3.5%에서 4개월 사이 0.24%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금융권은 이달 주요 시중은행들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가 지난해 12월(연 4.29%) 이후 10개월 만에 연 4%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9일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시중은행 정기예금 38개 중 금리가 연 4%를 넘는 상품(20개)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통상 예금보다 금리가 높은 적금의 경우, 두 자릿수 금리를 제시하는 상품도 적지 않다. 전북은행의 ‘JB슈퍼시드 적금’(최고 연 13.6%), 광주은행의 ‘광주은행제휴적금with유플러스닷컴’(연 13%), 우리은행의 ‘데일리 워킹 적금’(연 11%)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픽=송윤혜

저축은행도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최근 금리를 올리는 추세다. 29일 기준 저축은행 업권의 평균 정기예금 금리는 연 4.14%(1년 만기)로 하반기에만 0.18%포인트 올랐다. 저축은행들은 올해 부동산 시장 둔화 등 경기 부진 영향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등의 연체율이 오르면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자 예·적금 금리를 크게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일제히 올리면서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권 일부에서도 두 자릿수 금리의 적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대출 금리 상승 우려

금융권 예·적금 금리 경쟁이 가열되는 것은 올해 4분기(10~12월) 풀리는 막대한 시중 자금을 붙잡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채권 금리가 치솟고 돈줄이 막히면서 은행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리면서 은행들은 연 4~5%대 고금리 특판을 쏟아냈다. 이에 따라 시중 자금이 은행 예금으로 대거 몰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11월에만 시중은행 정기예금이 82조원가량 늘었다. 시장에서는 올해 4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금융권 예·적금 규모가 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금리에 묶여 있던 자금이 뭉텅이로 빠져나갈 것에 대비해 저축은행중앙회는 최근 비상시 꺼내 쓸 ‘예탁금’ 규모를 평소 8조~9조원 수준에서 10조원으로 늘리기도 했다. 예탁금은 저축은행들이 중앙회에 일부 자금을 맡겨 두고, 대규모 자금 인출 등의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공동 자금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금리 예·적금 탓에 늘어난 지출을 만회하려면 대출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16년 만에 처음 연 5%를 돌파하는 등 시장 금리가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수신 금리까지 오르면서 대출 금리는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 범위가 최근 한 달여 사이 0.46%포인트(범위 하단 기준) 상승하는 동안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 금리는 0.268%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은행들이 지표금리에 ‘가산 금리’를 많이 붙여 최종 대출 금리를 크게 높인 것이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이 은행채 발행 등 예금 이외의 다른 경로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수신 금리와 연동된 대출 금리 상승이 서민층의 빚 상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출 금리가 크게 낮아지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당국이 가계 빚 증가를 억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여서 대출 금리를 낮춰 대출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