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가부키초(歌舞伎町). 젊고 세련된 남성들이 술시중을 드는 호스트바가 밀집한 대표적인 유흥거리다. 지역 특성상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지만, 최근 단골 손님이 낸 술값과 팁 4000만엔(3억6000만원) 때문에 경찰에 체포된 유명 남성 접대부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어떤 사연일까.
사건의 발단은 20대 여성인 와타나베마이(渡辺真衣)의 통큰 술값과 팁에서 시작됐다. 와타나베는 온라인 만남어플에서 알게 된 50~60대 중년 남성들에게서 돈을 뜯어내 생활하는 젊은 꽃뱀이었다. 그는 지난 2021년부터 2년 동안 다수의 남성들에게 접근해 현금 1억엔(9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와타나베는 육체 관계를 하지 않고서도 중년 남성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다는 내용으로 ‘꽃뱀 매뉴얼’을 제작해 SNS에서 팔았다. 2권 세트로 가격은 3만엔(27만원).
중년 남성에게 돈을 뜯어내는 기술을 와타나베는 ‘마법(魔法)’이라고 표현했다. 남자들이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오빠가 도와줄게’라고 말하게 하려면, 치밀한 설정과 요령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런 걸 누가 돈 주고 살까 싶은데, 와타나베가 만든 ‘꽃뱀 매뉴얼’은 2000여명이나 사갔다.
와타나베는 꽃뱀 사냥감으로 적당한 중년 남성의 특징을 매뉴얼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삶에 희망이 없어 보이고, 일의 보람도 못 느끼고, 매일 일에 지쳐 밤늦게 귀가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바로 쓰러져 자고... 집·회사, 집·회사를 반복해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무기력한 중년 남성을 골라라.”
와타나베에게 4000만엔을 건넨 54세 남성 피해자는 “사업에 실패했고 빚 잔치를 앞두고 있다”는 눈물의 호소에 속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와타나베는 이 돈을 어디에 썼을까.
와타나베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부키초의 대형 호스트바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가 마음에 들어한 남성 접대부는 다나카히로시(田中裕志·26). 와타나베는 파견직 근로자로 일하는 54세 남성에게서 가로챈 돈 4000만엔을 단 이틀 만에 탕진했다. 그는 “담당 호스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업소에서 원가 3000엔짜리 주전자를 현금 1273만엔을 주고 샀다... (담당 호스트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싶어서 2763만엔을 술값과 팁으로 하루에 다 썼다”고 매뉴얼에서 밝혔다.
와타나베가 ‘응원’한 다나카는 중소기업급 매출을 올리며 흥행 파워를 이어가던 인기 접대부였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 다나카는 고연봉이 예상되는 남성 접대부 시장에 뛰어들었다(일본은 호스트바가 합법이다). 단 3년 만에 연 매출 1억1000만엔(약 10억원)을 올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 됐다. 자산도 1억엔(약 9억원) 넘게 모았다. 그는 유튜브에서 돈뭉치를 쌓아 놓고서는 “집에 있는 현금이 6000만엔(5억4000만원) 정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X(옛 트위터)에서는 접대부로 일하며 모은 돈을 일본 고배당주와 미국 고배당주(VYM, SPYD, HDV)에 투자하고 있다는 재테크 감각도 뽐냈다.
단기간에 큰 돈을 벌어 자랑하던 다나카. 하지만 그는 지난 24일 조직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다나카가 일하는 호스트바 책임자도 같은 혐의로 체포됐다.
다나카의 단골 손님이었던 와타나베가 호스트바에 지불한 4000만엔이 발목을 잡았다. 이들은 와타나베가 지불한 자금의 원천이 요코하마에 사는 50대 남성에게 뜯어낸 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은 돈이라는 걸 알면서도 수수하는 것은 범죄다. 다나카의 스마트폰에 와타나베의 ‘꽃뱀 매뉴얼’ 파일이 들어 있었고, 2763만엔이라고 선명하게 찍힌 업소 영수증 등이 결정적 증거가 됐다.
일본 ANN뉴스는 지난 25일 “조직범죄처벌법은 통상 조직폭력배나 테러집단, 특수사기집단 등이 주요 처벌 대상인데, 이번 사건은 호스트와 고객의 관계에서 적용된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