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공매도 금지 조치 발표 후 첫 거래일인 6일, 외국계 증권사들의 한국사무소에는 해외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공매도가 갑자기 금지되다니, 한국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이냐’고 묻는 전화가 대부분이었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금요일까지 공매도 금지를 부인하던 정부가 일요일에 기습적으로 발표했다”며 “공매도 투자를 했던 외국인들이 손실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루 종일 주식을 되사들여 공매도 계약 청산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간 한국 증시에서 공매도를 쥐락펴락했던 외국인들이 이날 ‘패닉 바잉(공황 매수)’에 나서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외국인 순매수로 주식시장이 급등한 것은 물론이고,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까지 급등(원·달러 환율 급락)한 것이다.
◇한국만 단독으로 공매도 전면 금지
과거 세 차례 공매도 금지는 모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뤄졌다. 코로나 사태의 한복판이던 지난 2020년 3월이 대표적이다. 당시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자 프랑스·이탈리아·대만·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들이 공매도를 금지시켰다. 미국도 부분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만 단독으로 공매도 전면 금지에 나섰다. 예상 외 금지 조치에 6일 외국인들이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코스피는 5%, 코스닥지수는 7% 넘게 급등했다. 코스피는 하루 만에 2300대에서 2500대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을 합쳐 전체 55개 업종 가운데 54개가 오를 정도로 시장 전체가 상승세였다.
외국인은 지난 6월 이후 국내 증시에서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를 이어왔다. 하지만 6일에는 코스피시장에서 7100억원, 코스닥시장에서 4800억원 등 1조2000억원 가깝게 순매수했다. 외국인 순매수는 LG에너지솔루션(1472억원)·에코프로비엠(730억원)·에코프로(649억원) 등 이차전지주에 집중됐다. 이차전지는 그동안 외국인들의 공매도가 집중됐던 업종이다.
외국인들은 이차전지 외에도 공매도가 많았던 종목들을 대거 사들였다. 코스피 공매도 상위 5위인 아모레퍼시픽을 273억원어치 순매수했고, 10위 SKC도 254억원어치 사들였다. 코스닥 공매도 잔액 4위인 HLB도 315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들이 대거 순매수에 나서면서 이들 종목의 주가도 급등했다. 아모레퍼시픽이 7.5% 급등한 것을 비롯해 SKC, HLB도 각각 13.5%, 14.4% 올랐다.
◇원·엔 환율 15년 10개월 만에 최저치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5.1원 내린 1297.3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원·달러 환율 하락 폭으로는 올 들어 최대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1달러를 1350원 넘게 주고 바꿔야 했던 환율이 뚝 떨어졌다. 달러 환율이 1300원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8월 1일(1283.8원) 이후 3개월여 만이다.
외국인들의 주식 패닉 바잉 외에 미국 금리 인상이 사실상 끝났다는 기대감 속에 전 세계적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한 것도 원화 강세에 영향을 미쳤다.
이날 급격한 원화 강세로 원·엔 환율도 뚝 떨어졌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이날 867원까지 하락, 지난 2008년 1월 중순 이후 15년 10개월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6일 시장을 뒤흔든 공매도 금지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외국인들의 공매도 주식 되사기가 1~2주 정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외국인들의 공매도 되사기가 끝나면 한국 주식을 사려는 글로벌 수요가 이전보다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3차례 공매도 전면 금지 당시에 증시는 한 차례 떨어졌고, 두 차례 오르는 등 일관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