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모(30)씨는 최근 신용카드 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스마트폰 앱에 접속했다가 당황했다. 김씨는 대금 수십만원을 두세 차례에 나눠서 납부하고 싶었는데, 앱 화면에는 결제할 금액과 함께 ‘즉시 결제’, ‘분할 납부’, ‘일부 결제’ 등 세 개의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돼 있었다.

일부 대금만 먼저 내고 싶었던 김씨가 ‘일부 결제’를 누르니 ‘이번 달만 최소 금액으로 결제’라는 안내문이 떴다. 안내문엔 “최소 결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다음 결제일까지 수수료가 발생합니다”라는 글도 적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카드사에서 제공하는 ‘리볼빙(결제액 이월 약정)’ 서비스였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최소 10%만 우선 갚고 나머지는 다음 달로 넘겨 갚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카드 대금을 갚기 어려운 이용자들이 일단은 당장 연체를 막기 위한 용도로 쓴다.

하지만 리볼빙은 현재 최고 수수료율이 법정 최고 금리인 20%에 근접한다. 그래서 함부로 시작했다간 빚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테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금융 당국이 소비자 설명 의무를 강화하면서 ‘리볼빙 주의보’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리볼빙’이란 단어가 최근 부정적인 이미지가 커지자 카드사들이 ‘리볼빙’이나, 명확하게 뜻을 알 수 있는 ‘일부 결제 금액 이월’이란 단어를 교묘하게 피해 리볼빙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일부 결제’, ‘최소 금액 결제’ 제각각 표기

실제 7일 본지가 확인해 보니, 신한·KB국민·삼성·현대·우리·하나·롯데 등 7개 전업 카드사는 모두 스마트폰 앱에서 리볼빙을 다른 단어로 표기하고 있었다. 신한카드는 ‘일부 결제’, 현대카드는 ‘일부만 결제’, 삼성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는 ‘최소 결제’로 표기했다. 롯데카드는 ‘미납 걱정 없이 결제’, ’최소 결제’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결제 금액이 부담될 때 최소 결제를 이용해보세요’ 등으로 홍보하고 있다.

다만, 카드사 관계자는 “홈페이지 화면과 달리 모바일 앱은 화면에 전체 명칭을 모두 담기 어려워 서비스의 핵심 내용을 담아 표기하고 있다”며 “해당 문구를 선택하면 ‘리볼빙’ 상세 화면으로 전환되어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들의 ‘리볼빙’ 표기를 두고 논란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금융위원회는 카드사의 대출 상품 이름이 소비자에게 혼동을 준다며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표기하도록 관련 법을 개정했다. 당시 리볼빙도 단어 뜻을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는데 그래서 나온 표현이 ‘일부 결제 금액 이월’이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카드사의 ‘현금 서비스’ 명칭은 아예 ‘단기 카드 대출’로 바꿨다. 현금 서비스는 사실상 신용카드를 사용해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는 실질적 대출 상품인데, 일부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위는 “일부 고령층과 취약 계층이 현금 서비스를 예금 인출 등으로 오인해 이용하다 원하지 않는 채무를 지고 있다”고 했다.

◇리볼빙 잔액은 역대 최대

일각에선 일단 카드사들의 리볼빙 표기부터 혼동을 주지 않도록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리볼빙 이자 부담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7개 카드사의 리볼빙 평균 수수료율은 연 15.30~17.88%로 집계됐다. 카드사 전체로 넓히면, 최고 리볼빙 수수료율은 법정 최고 금리(연 20%)에 가까운 연 19% 수준이다.

이렇게 높은 이자율에도 국내 주요 카드사의 리볼빙 잔액은 작년 사상 처음 7조원을 넘은 뒤 계속해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리볼빙 이월 잔액은 7조4922억원으로 전월보다 1242억원 늘었다. 2021년 11월 리볼빙 관련 공시를 시작한 후 최고 규모다.

금융감독원은 “리볼빙 약정 시 제공받은 설명서를 통해 수수료율, 최소 결제 비율 및 약정 결제 비율 등 거래 조건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며 “상환 능력이 개선되면 리볼빙 잔액을 선결제하거나 결제 비율을 상향해 리볼빙 잔액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