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고금리 대출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낮은 금리의 상품으로 갈아탈 때 은행에 내야 하는 수수료가 한시 면제된다. 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적용되는 대출 범위를 점차 확대하고,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감안한 대출 금리 산정 방식을 도입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안도 추진된다. DSR은 대출자가 한 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현재 40%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8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유관 기관과 함께 ‘가계 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어 이러한 내용의 가계 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했다.

그래픽=백형선

◇중도 상환 수수료 한시 면제

이번 대책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빌린 돈을 만기 이전에 갚을 때 은행에 내야 하는 중도 상환 수수료를 당분간 내지 않게끔 금융 당국이 은행과 적극 협의하겠다는 내용이다. 은행들은 고객이 빌린 돈을 얼마 지나지 않아 갚아버리면 자금 운용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벌금 성격 수수료를 매긴다. 주택 담보대출을 기준으로 보통 돈을 빌린 시점부터 3년 안에 갚으면 수수료가 발생하고, 수수료율은 1.2~1.4% 정도다. 수수료율은 3년 중 남은 기간에 따라 달라진다. 예컨대 3억원을 빌린 지 1년 만에 돈을 갚으면 수수료로 240만원(3억원X1.2%X3년 중 잔여 기간 비율)을 내야 한다. 조만간 이 수수료를 한시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고금리로 갈수록 이자를 갚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때 금융 소비자들이 부담을 더 지지 않도록 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가계 빚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DSR을 조정해 대출 증가세를 억누르는 대책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중도금 대출, 예적금 담보대출을 비롯해 서민 금융 상품 등은 DSR 산출에서 제외되는데 이러한 예외 기준을 조금씩 줄여 대출 한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DSR 규제 40%가 적용되기 이전에 대출받았던 이들에겐 종전 한도 비율을 유지해 줬는데, 혜택을 줄여가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또 금융위는 ‘변동 금리 스트레스 DSR’ 산정 방식을 다음 달 중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스트레스 DSR은 앞으로 금리 상승 가능성을 고려한 엄격한 규제로, DSR 산정 시 일정 수준 가산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

◇은행권 금리 상승은 멈춰

한편 가계 빚 증가세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예금은행의 가계 대출 잔액은 9월보다 6조8000억원 늘었다. 지난 4월부터 7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난 9월(4조 8000억원)보다도 증가 폭이 2조원 넘게 커졌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21년 105.4%에서 작년 104.5%로 줄었고, 올해도 1분기 기준 101.5%로 떨어졌다”고 했다.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떨어진 것은 2003~2004년 카드 사태 이후 19년 만에 처음이다. 다만 부채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 금융위 입장이다.

은행들은 가계 빚을 줄이려는 금융 당국 의도와 달리 최근 금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혼합형 주택 담보대출 상품 최고 금리는 이날 기준 연 5.19~6.34%를 기록했다. 지난 한 달 사이 0.2~0.3%포인트가량 올랐던 주택 담보대출 금리 상승세가 소폭 꺾인 것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대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은행권에 대한 ‘이자 장사’ 비판에 은행들이 알아서 금리를 낮추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출 부담 완화’와 ‘가계 빚 억제’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 사이에 엇박자가 난다는 말도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조달 금리인 은행채 금리 하락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