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의균

직장인 박모(39)씨는 지난 6월 ‘TIGER 일본엔선물’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 100엔당 원화 환율이 900원 밑으로 내려갔다는 언론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일본 엔화가 900원 밑으로 내려가자 주위에서도 여름휴가 때 일본 여행을 가려고 미리 환전을 해뒀다는 둥 난리가 났었다”면서 “조만간 환율이 다시 오를 것(엔화 강세)이라고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투자했지만, 환율이 더 떨어져(원화 강세) 꽤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역대급’ 엔저(低)에 엔화로 된 자산에 투자한 ‘일학개미’들 근심이 커지고 있다. 올해 초 100엔당 원화 환율은 968원선에서 출발, 4월에는 1000원을 넘기기도 하는 등 5월까지만 해도 대체로 상승 분위기였다. 그런데 5월 이후 엔화 환율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6월엔 100엔당 900원이 깨졌다. 이 즈음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엔화를 기초로 한 자산 투자 ‘붐’이 일었다. 엔화 환율이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향후 엔화가 반등하면서 환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엔화 환율은 864원대까지 내렸다.

그래픽=김의균

◇엔화 약세에 눈물짓는 일학개미

TIGER 일본엔선물 ETF 순자산총액은 지난 5월말 기준 230억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엔화 환율이 하락하면서 박씨처럼 환차익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몰려 현재는 1320억원대까지 늘었다. 하지만 TIGER 일본엔선물 ETF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9.4%, 6월 이후 수익률도 -9.1%로 일학개미들의 기대와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일본 주요 주가지수를 좇는 ETF 중 환노출형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기분이 찜찜하긴 매한가지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지난 2일의 사례다. 이날 닛케이 평균은 1.1% 올랐다. 하지만 닛케이 평균을 기초지수로 하는 ETF인 ‘TIGER 일본니케이 225′는 전날과 같은 1만7240원을 기록했다. 이 ETF가 환율 변동에 자산을 노출하는 환노출형 ETF이기 때문이다. 주가가 올랐어도 환차손이 생겨 합산 결과 별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손실을 봤다는 뜻이다. 이 ETF의 올해 수익률은 18.4%로 닛케이 평균의 올해 상승률(26.6%)에 크게 못 미친다.

일본 증시에 직접 투자한 투자자들도 울상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일본 증시에 직접 투자한 일학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것은 ‘아이셰어즈 미 국채 20년물 엔화 헤지 ETF’로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 금액은 3억6274만달러(약 4800억원)에 이른다. 순매수 2위 종목인 ‘글로벌 X 일본 반도체 ETF’의 순매수 금액이 4387만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아이셰어즈 미 국채 20년물 엔화 헤지 ETF가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ETF는 엔화로 만기 20년 이상의 미국 초장기채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 향후 미국의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 가격 상승과 더불어 환차익까지 노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이 많이 몰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 국채 금리 급등으로 20%에 가까이 손실을 기록 중이다. 특히 한국인 투자자는 환율 하락으로 인한 환손실까지 추가로 떠안게 됐다.

◇”내년 중반쯤엔 엔화 가치 오를 것”

전문가들은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당분간은 엔화 약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현재 수준에서 더 내려갈 것 같지는 않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 고려시 100엔당 원화 환율 860원대는 과도하게 낮은 수준”이라면서 “추가 하락보다는 900원대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도 “연말까지 870~900원 사이에서 등락할 것”이라면서 “내년에는 미국의 금리 인상 종결 기대가 높아지는 반면, 일본은 통화 긴축 여지가 남았다는 점에서 환율이 900원 내외로 올라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1990년대 일본 외환정책 책임자로서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일본 대장성 재무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여름쯤엔 지금의 양적 완화 정책을 긴축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그즈음 엔화가 강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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