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지원·Midjourney

은퇴를 앞둔 직장인 고모(59)씨는 최근 모친상을 치르고, 세무대리인과 상속세를 상담하다가 예상보다 큰 예상 세액에 놀랐다. 어머니의 재산은 20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남긴 제주도의 감귤 과수원이 사실상 전부다. 현재 과수원의 공시지가는 15억원, 감정가액은 50억원, 인근 공인중개사가 언급하는 예상 거래 시세는 대략 60억~70억원이다.

세무대리인에 따르면, 원래는 공시가격(15억원)으로 상속재산을 평가했다. 이 경우 상속세가 2억3434만원이다. 하지만 4개월 전인 지난 7월 국세청 훈령이 개정되면서 지금은 감정가액(50억원)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따라서 상속세가 무려 17억3387만원으로 기존보다 15억원이나 급증했다는 것이다.

◇공시가격 인정받기 어려워져

최근 국세청 훈령 개정으로 비(非)주거용 부동산의 평가가치가 기존보다 급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평가가치가 오르면 그에 따르는 상속세 부담도 커진다. 세금 전문가들은 “바뀐 법령을 미리 숙지해야, 예상하지 못한 상속세로 현금 흐름이 막히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법상 상속 및 증여재산은 원칙적으로 시가(時價)로 평가한다. 여기서 시가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장 가치, 즉 최근 6개월 이내 동종 부동산의 ‘실거래가’ 또는 ‘감정가액’ 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이때는 해당 재산의 종류·규모·거래 상황 등을 고려해 토지는 개별 공시지가, 건물·오피스텔은 기준 시가, 주택은 개별 주택 가격과 공동 주택 가격 등을 시가로 본다.

그런데 토지·빌딩 등과 같은 ‘비주거용 부동산’은 동종 거래량이 없거나 적어서 실거래가를 알기 어렵다. 따라서 그간에는 실무적으로 ‘공시가격’을 대신 적용해 왔다. 그러나 올해 7월 바뀐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 처리 규정’은 적용 기준을 명시했다. 국세청이 추정한 시가와 기준 시가 차액이 10억원 이상이거나 추정 시가 대비 차액이 10% 이상인 비주거용 부동산은 ‘추정 시가’로 상속 및 증여재산을 평가하게 된 것이다.

고씨의 사례도 공시가격(15억원)과 감정가액(50억원)의 차이가 10억원 이상 나기 때문에, 납세자가 감정가액으로 신고하지 않으면 개정된 훈령에 따라 국세청이 직권으로 ‘추정 시가’로 과세할 수 있다. 국세청의 추정 시가 역시 전문가 감정가액의 평균치로 계산된다. 다만 납세자 스스로 의뢰한 감정가액이 좀 더 납세자에게 유리할 수는 있다.

결과적으로 고씨의 경우 시가(감정가액) 평가로 기존 공시가격 대비 상속재산 평가는 3.3배 증가했는데, 이에 따라 상속세는 무려 7.4배가 증가했다. 상속재산 평가 증가율보다 상속세 증가율이 배 이상 높은 것이다.

그래픽=이지원

◇상속세 더 내지만, 양도소득세는 감소

훈령 변경으로 상속인 입장에서는 부담만 늘어난 것일까.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당장은 상속세가 올라가지만, 상속인이 차후 부동산을 처분할 때 취득 가격이 감정가액으로 인정돼 향후 양도소득세가 감소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부동산이 향후 감정가액 이상으로 상승한다는 가정하에 양도소득세 절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감정가액 이하로 부동산이 하락하여 처분할 경우 양도차손이 발생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는 물론 없게 되지만, 과거에 이미 낸 상속세를 돌려주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상속세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장기 플랜이 더 효율적이다. 예상 상속재산이 부동산에 편중되어 있을 경우엔 납세 자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둘러 일부 재산을 일찍 증여하는 것도 방법이며, 생전에 부동산을 일부 처분해서 금융 재산을 마련해 놓거나, 부부 교차 종신보험에 가입하거나 자녀가 부모를 피보험자로 하는 종신보험에 가입해 상속이 발생했을 때 사망보험금이 지급되게 설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상속 발생 이후 상속세가 부담스럽다면 관할 세무서에 ‘연부연납’ 신청을 통해 최대 10년 동안 할부로 낼 수 있다.

◇조항 적용 납세자 스스로 알아봐야

대부분의 빌딩·상가 등 부동산이 공시가격과 시가의 차이가 10% 이상 벌어진다. 이 때문에 새 훈령으로 인한 감정평가 대상은 향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사실상 토지나 근린시설 등은 공시가격이 감정가액의 10~50%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상당수이므로 감정가액으로 평가 시 향후 상속세 부담은 대폭 증가될 것이다.

정부가 법령을 바꾸면 조세 저항이 우려돼, 국세공무원이 지켜야 할 사무처리규정을 개정하여 실무적으로 사실상 상속세를 증세한 것이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세공무원이 지켜야 하는 내부 훈령의 개정이기 때문에 아직도 납세자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향후 납세자와 국세청의 마찰 및 소송 증가가 예상된다.

또 ‘추정 시가’ 적용 여부를 정부가 미리 알려주지 않고, 상속인들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점은 아쉽다. 상속 부동산의 ‘공시가격-시가 차이’가 10억원이나 10% 이상인지 여부를 알아보려면, 시가로 인정되는 감정가액을 받아봐야 한다. 결국 납세자들이 돈을 들여 감정가액 의뢰를 해야 본인이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예측 가능성 면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국민들이 상속 관련 의사 결정을 하기 쉽도록,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관련 규정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