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의 어차피 안돼병(どうせダメ病)이 완치됐다!”

요즘 일본 증권가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어차피 안돼병’은 일본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주가가 장기간 횡보하면서 나오게 된 자조적인 유행어다. 기관과 개인 모두 일본 주식을 거래하지 않아 증시 활력은 떨어졌고 ‘잃어버린 30년’의 늪에 빠졌다.

그런데 올해 일본 증시가 반전 드라마를 쓰면서 투자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일본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은 24일 종가 기준으로 33년 만의 최고치인 3만3625.53에 마감했다. 직전 최고치는 1990년 3월 3만3993이었다. 지난 20일 장중에는 3만3850 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상장사들의 2023회계연도 상반기(4∼9월)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고, 우량 대기업 상장사 260곳의 주가는 올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저(円低) 효과에 힘입어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이 호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업들의 일본행도 늘어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올 초 상장사들이 보유 현금을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에 써서 기업 가치를 높이도록 유도한 것도 증시엔 순풍이다.

그래픽=김현국

◇日 도요타 영업이익 年 40조 육박

시가총액 1위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기업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4조5000억엔(약 39조3400억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연초만 해도 도요타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3조엔(약 26조원)으로 한국 현대차·기아의 예상 영업이익(27조5000억원)과 비슷했는데, 최근 대폭 상향 조정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요타는 달러당 엔화 가치가 1엔 하락할 때마다 영업이익이 450억엔 늘어난다. 엔화 가치가 싸지면 일본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서 더 많이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전 세계 주요국 중에서 유일하게 금융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향후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또 올해 주가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달러로 환산한 상승률로 바꾸면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닛케이평균은 엔화 기준으로 31% 올랐지만 달러 환산 상승률은 16% 정도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24일 “높은 인플레로 내년에 일본은 정책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은데 다른 주요국은 금리를 인하하려는 상황이어서 글로벌 소외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