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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48세였던 2001년 암 보험에 가입했다. 부모 모두 암에 걸려 60대 초반에 사망했기 때문에 70세로 설정된 보장 만기가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당시엔 전혀 하지 못했다. 22년이 지난 올해, A씨는 70세가 됐고, 최근 암 보험 보장은 끝나버렸다.

A씨가 최고 5000만원 한도까지 보상해주던 종전 암 보험과 비슷한 상품에 새로 가입하려고 보니, 보험료가 무려 3배 가까이 차이 났다. 특별한 질환이 없지만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존에 월 9만8818원이던 보험료가 28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는 “지금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살 날은 많이 남았는데 보장받을 보험이 없어져버리니, 엄동설한에 벌거벗은 채 나앉은 느낌”이라며 “덜컥 아파서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100세 시대에 보험 40%가 ‘80세 전 만기’

26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60세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생명보험 계약(2645만 건) 중 80세 이전에 만기를 맞는 상품이 총 1055만건으로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대 수명 ‘100세 시대’가 다가왔는데, 상당수 고령자들이 암이나 뇌졸중 같은 질병에 걸려도 기존 보험의 보장 기간이 끝나서 보장을 받을 수 없는 ‘보험 절벽’에 놓여있는 것이다.

고령자들의 보험 절벽은 20~30년 전 보험에 가입했던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 당시에는 “70세나 80세 만기 정도로 보험 상품에 가입하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기존에 가입한 최대 80세 만기의 보험으로는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은 1970년 62.3세에 불과했지만, 2021년 83.6세까지 길어졌다.

고령자라고 보험 상품에 아예 가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각 보험사들이 평균 수명 연장에 맞춰 고령자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자가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의 경우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문제다. 또 질병 보험의 경우 고령자들이 보험 가입 심사 단계에서 거절될 가능성도 크다.

보험업계에서는 “고령자일수록 보험금 지급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고령자 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료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보험개발원의 생명보험 관련 연령별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암 수술의 경우 60~69세가 2만2732건으로 30~39세(4039건)의 5.6배에 달했다. 70세 이상의 암 수술도 7031건으로 30대보다 훨씬 많았다.

◇미국에선 “100세 만기 연장해달라” 소송도

고령자들의 보험 절벽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미국에서는 100세 노인이 “보험 계약 당시 만기로 설정된 100세 보장을 사망할 때까지로 늘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00세를 맞은 개리 레빈씨는 생명보험 회사 트랜스아메리카를 상대로 “회사가 보험을 팔 당시 알면서도 지나치게 낮게 만기 연령을 책정했다. 판매 당시 생명보험이 마치 평생 보장되는 것처럼 잘못 홍보했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계약 당시 보험 약관을 근거로 보험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WSJ는 “2000년 초·중반에 판매된 생명보험의 표준 만기 연령(100세)은 과거에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100세를 넘은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면서 미국 생명보험 업계의 ‘고민거리’로 등장하게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