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일본 증시가 33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일본 증시의 최대 큰손인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13년 투자 성적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2010년 12월 ‘포괄적인 금융완화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의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ETF란 특정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간접투자상품으로, 개별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실시간 거래된다. 13년 동안 진행된 일본은행의 적립식 ETF 투자 성과는 어떨까.

그래픽=양인성

✅BOJ, 매년 1조엔 챙기는 배당부자

일본은행은 13년 동안 ETF를 사기만 했고, 판 적은 없었다. 그 결과 지난 6월 말 기준 일본은행의 ETF 보유 잔액은 60조엔(약 526조원)에 달했다. 세계 최대 기관 투자자인 일본 공적연금(GPIF)의 일본 주식 보유액(50조엔)도 훌쩍 뛰어넘는다. ETF 투자에 따른 평가 이익은 24조엔(약 210조원)에 달한다. 일본은행이 처음 ETF를 투자한 당시 닛케이평균이 1만선 근처였고 지금은 3만3000선이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 대주주에도 일본은행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 ‘유니클로’로 잘 알려진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은 최대주주가 일본은행(21.9%)이다.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회장 지분(19.5%)보다 많다. 패스트리테일링처럼 일본은행이 직간접적으로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72곳에 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올해 ETF 분배금(배당)으로만 1조1000억엔(약 9조6100억원)을 받았다. 일본 정부의 고배당 유도 정책을 등에 업고 내년에 챙길 분배금은 1조2400억엔이 넘을 전망이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올해 받은 배당금(57억달러·7조4400억원)보다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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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호황장에 ETF 매수 첫 중단

일본은행이 자국 ETF를 매수해서 보유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우량주 위주의 ETF라고 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대규모 손실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ETF를 시장에서 직접 매수해 보유하는 곳은 전 세계 중앙은행 중에 일본은행이 유일하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안전한 국채나 정부 보증 채권 등을 위주로 자금을 운용한다.

그런데 13년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일본은행의 ETF 매수 행진에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2023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ETF 매수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 반기 기준으로 ETF를 전혀 매수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2021년부터 일본은행은 주가지수(TOPIX)가 오전에 2% 이상 하락하는 날에 한정해서 ETF를 매수하고 있다”면서 “올 상반기엔 증시 환경이 좋아서 2% 이상 하락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행의 ETF 매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투자서적 ‘1%를 읽는 힘’의 저자 메르씨는 “일본은행의 ETF 잔액은 총자산 대비 8% 정도로 비율이 아주 높지는 않은데, 증시 호황장에서 ETF를 더 사면 과열에 동참하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서 “지금은 비율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유지하다가 주가 급락기에 추가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대규모 ETF는 시한폭탄” 의견도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꾸준한 적립식 주식 투자의 장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일본은행의 13년 ETF 매수의 중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ETF를 대량 보유하면서 ‘주식 공룡’이 된 일본은행을 둘러싸고, 일본 현지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주가 급락으로 일본은행이 충당금을 쌓아야 하면 국고로 납부할 금액이 줄고, 이렇게 되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은행은 ETF 처분과 관련해 구체적인 전략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기우치다카히데(木内登英)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NHK 인터뷰에서 “거액의 ETF를 보유하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이며, 일본은행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위험한 ETF를 계속 보유할 이유가 없고, 100년이 걸리더라도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