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국내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 상위엔 반도체 테마형 ETF가 대거 포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관련주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 주식형 ETF 상위권을 차지하던 이차전지 ETF가 주춤한 사이 그 자리를 반도체 ETF가 차지한 것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ETF 중에서 연초 이후 지난 27일까지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종목은 KB자산운용의 ‘KBSTAR 비메모리반도체액티브’였다. 이 ETF는 올해 들어 63.7% 급등했다. 기초 지수를 2배로 좇기 때문에 상승할 땐 일반적인 ETF보다 훨씬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레버리지 ETF들까지 제쳤다. 금정섭 KB자산운용 ETF마케팅본부장은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대해 대규모의 투자가 이뤄지면서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대폭 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BSTAR 비메모리반도체액티브 이외에 ‘TIGER 반도체’(55.3%), ‘KODEX 반도체’(54.4%), ‘TIGER Fn반도체TOP10′(53.6%) 등 반도체 관련 ETF도 수익률 상위 10개 ETF에 포함됐다.
◇잘나가는 반도체 ETF…왜?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상반기 국내 주식형 ETF 수익률 상위 10종목 중엔 ‘TIGER 2차전지테마’를 비롯한 이차전지 ETF 3종이 들어 있었고, 반도체 ETF는 한 종목도 포함되지 않았다. 정성인 키움투자자산운용 ETF마케팅사업부장은 “이차전지 관련주는 상반기에 많이 올랐다가 3분기에 주가가 내렸지만, 반도체 관련주는 최근 강세를 보이면서 ETF 순위가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차전지 대표주 에코프로는 올해 초 11만원에서 7월 25일 129만3000원까지 급등했다가 현재는 70만원 근처까지 내렸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 리튬 가격 하락 등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반면,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한미반도체가 올해 들어 400% 넘게 폭등하는 등 반도체주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대형 반도체 기업들도 메모리 감산(減産) 효과 등에 힘입어 4분기부터 실적이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란 전망에 3분기 이후 상승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엔 AI 시장이 클라우드 중심에서 스마트폰·PC 등 사용자와 밀접하게 붙어 있는 온(on)디바이스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에 저전력 메모리 설계 기업 제주반도체의 주가가 이달 들어 70% 넘게 뛰는 등 반도체 업종 전반에 호재가 더해졌다.
이렇듯 AI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늘자 운용사들도 관련 ETF를 속속 출시하고 있다. 국내 양대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지난 21일 AI 반도체 관련 ETF를 나란히 상장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AI반도체핵심공정’과 삼성자산운용의 ‘KODEX AI반도체핵심장비’는 상장 이후 27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이 각각 155억원, 85억원어치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테마형 ETF 장기 투자는 조심해야
반도체 ETF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테마형 ETF는 비교적 적은 종목으로 구성돼 있어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테마형 ETF가 시장의 주된 관심을 받는 종목에 주로 투자하다 보니 이미 고평가된 종목이 ETF에 많이 편입되고, 그래서 상장 이후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저조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올해 상장된 ETF 가운데 고(高) 변동성 ETF로 분류된 ETF는 38개로 이 중 반도체 관련 ETF와 이차전지 관련 ETF가 각각 7개로 가장 많았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테마형 ETF에 투자할 때는 매수 후 장기 보유하는 ‘바이 앤드 홀드(Buy and Hold)’ 전략을 무조건 고수하기보다는 개별 종목에 투자할 때처럼 쏠림에 유의하면서 매수와 매도 시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