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엔 혼자서 즐겁게 사는 게 최고다” vs “그래도 둘이 서로 의지하며 늙어가는 게 좋다”
은퇴는 부부가 인생 쉼표를 찍고 새롭게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자녀들이 독립해서 떠나고 나면 부부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퇴직하고 집에서 왕노릇하는 남편이 밉다’, ‘월급 끊겼다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마녀 같다’면서 갈라설 구실을 찾기도 하고, “병들고 아프면 자식들은 소용 없고, 결국 배우자밖에 없다”, “나이 들수록 부부뿐이고, 배우자 없는 인생은 재앙”이라면서 힘든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은퇴하면 누구랑 살까. 이에 대한 생각은 개인의 가치관과 신념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린다. 그래도 노후에 어떤 선택을 내린 인생 선배들이 평균적으로 더 만족하면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일본 핀웰연구소가 올해 초 60대 고령자 6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고, 삶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살고 있었다.
핀웰연구소의 노지리사토시(野尻哲史) 대표는 최근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은퇴하고 나서 누구와 사느냐는 노년기 삶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변수”라면서 “배우자와 함께 사는 은퇴가정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반면,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은 건강, 인간관계, 직장, 자산 등 모든 측면에서 삶의 만족도가 평균에 못 미쳐 격차가 컸다”고 말했다.
히토츠바시대학(상학부)을 졸업한 노지리 대표는 일본 메릴린치증권을 거쳐 피델리티운용 은퇴교육연구소장을 역임한 금융통이다. <노후 난민이 되지 않기 위한 자산 준비>, <자산 수명을 늘리는 현명한 기술> 등 은퇴와 관련된 책을 다수 펴냈다.
지난 2015년 피델리티운용 재직 시절엔 서울에서 한일 노후 준비와 관련한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2019년 ‘핀웰연구소’를 설립해 은퇴 준비 전도사로 활동 중인 노지리 대표에게 행복한 인생 후반전을 만드는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60대 은퇴자들이 아쉬워하는 것은?
“연초에 ‘60대 6000명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60대의 노후 생활에 대해 생활전반, 건강상태, 일의보람, 인간관계, 자산수준 등 5개 항목으로 나눠 살펴보고 ‘행복지수 오각형’을 만들었다. 오각형 모양을 보면 생활전반, 건강상태, 일의보람, 인간관계 등 4개 항목은 만족도 점수가 3점대로 중간 이상이다(만족 5점, 불만 1점). 일의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은퇴 생활을 즐기는 60대가 제법 많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산수준 항목은 만족도가 2점대로 낮았다.”
–자산수준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지난 2019년, 일본에선 금융청이 ‘100세 시대에 노후 자금 2000만엔(약 1억8000만원)이 더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이슈가 됐다. 그때 일반인들에게 ‘노후준비=2000만엔’이라는 숫자가 머릿 속에 각인된 것 같다. 이번 조사에서도 2000만엔을 분기점으로 자산수준 만족도에 온도차가 컸다. 2000만엔 넘는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삶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만족도가 낮았다. 참고로 자산수준 만족도가 가장 높은 경우는 1억엔(약 9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하면서 적당한 현금 흐름(연소득 1800만~3600만원)이 발생하는 가정이었다.”
–은퇴 후 누구랑 살 때 가장 행복한가.
“은퇴 가족 유형을 독신, 부부, 독신+자녀, 독신+부모, 부부+자녀, 부부+부모 등으로 세분화해서 만족도 조사를 진행했다. 그랬더니 노후에 부부끼리 사는 가정의 만족도가 전 영역에 걸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배우자는 노년기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이다(※설문 응답자의 80%가 남성이었기에 결국 아내가 있는 은퇴 남성의 생활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단 자식이든 부모든 식구가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나면 은퇴 부부끼리 살 때에 비해 삶의 만족도는 낮아졌다.”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인 그룹은?
“일본엔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부 발표(2020년 기준)에 따르면, 50대 1인가구 비중은 전체의 30.8%로, 약 514만명에 달한다. 한국도 싱글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알아야 할 점이 있다. 60대 이후 독거노인은 전 영역에 걸쳐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다. 고령 독신자는 건강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아프기 쉽고,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서 고독사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독거노인이라도 부모 혹은 자녀와 함께 살면 행복 곡선이 우상향했다. 60대 이후에는 혼자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 살게 됐다면?
“혼자 살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지역 사회 혹은 지인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서 외부와 교류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60대 독거노인이 재테크를 하고 있으면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단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산 운용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신과 외부를 잇는 연결 고리를 갖고 소통했기 때문이다.”
–노후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산악 사고는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많이 발생한다. 하산 루트에서 위험을 만나지 않으려면 험하지 않은 길을 고르고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사람의 인생도 하산 준비를 철저히 해야 성공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자산이 일찍 소진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퇴직한다고 해서 소비 수준이 ‘요이땅’하듯 바로 낮아지진 않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에 넉넉한 생활을 했던 가정이 퇴직 이후에 바로 씀씀이를 줄이긴 어렵다. 퇴직이 임박해 온다면, 생활비를 덜 써보려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통계를 보면 60대 후반 생활비는 50대 후반의 70% 정도다.
그렇다면 노후 생활비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우선 다음 공식을 보자.
노후 생활비는 크게 근로수입, 연금수입, 자산수입 등 3가지로 충당해야 한다. 퇴직 이후 재무 관리는 양쪽이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만약 노후 생활비가 더 커진 상태가 장시간 지속된다면, 인생 종착역엔 노인 파산이 기다리고 있다. 은퇴 준비는 위 등식에 나온 4개 항목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은 개인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다.
“품위 있는 노후는 현금 흐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일본도 개인이 보유하는 자산의 50% 이상이 토지였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1990년 전후 버블 경제 시기가 그랬다. 하지만 이후 토지 보유 비중은 현재 24% 정도까지 내려왔다. 지금은 현금·예금 비중이 33%로 가장 높고, 보험이나 연금, 유가증권 등에도 골고루 분산되어 있다.”
–요즘 한국에선 엔화 투자가 열풍인데.
“일본도 최근 미국 주식이나 미국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엄청 늘어났고 수익 면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현역 시절에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매도해서 부족한 노후 생활비로 써야 할 수도 있는 은퇴 세대라면 얘기가 다르다. 환율이 불리할 때 해외 자산을 매도한다면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위험도 있다. 해외 투자는 대상이 무엇이든 여유 자금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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