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면 다 돈인데, 그렇다고 맨날 안방에서 넷플릭스 보면서 집밥만 먹을 순 없고….”
고물가·고금리 쓰나미로 은퇴를 앞둔 사람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가계 생활비가 무섭게 오르는 상황에서 노후 자금은 얼마나 준비해야 충분할지 걱정이다.
일반적으로 60세가 되면 소득이 끊기기 때문에 가계 손익 구조는 마이너스로 바뀐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생애 주기 적자’ 추이를 봐도, 61세에 시작된 적자 인생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적자 절벽에서 살아남지 못한 고령자들은 파산 법원으로 향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국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개인 10명 중 4명(41%)은 60세 이상이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파산 신청자 중 60세 이상 비율은 올해 최고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현역 시절엔 잘나가다 나이 들어 가난해진 사람들에겐 어떤 문제점이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노후가 고달파진 사람들에겐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1️⃣은퇴했는데 씀씀이는 여전
은퇴 부부가 도시에서 살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이달 초 본지가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인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물어봤더니, 20~60대 남녀 응답자 1584명의 42%가 월평균 300만원이라고 했다. 그다음 많은 응답은 월평균 500만원으로, 전체의 30% 정도였다.
사실 예상 노후 생활비가 300만원이든, 500만원이든, 700만원이든, 소득이 이보다 더 많다면 자산 감소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은퇴 후 소득은 직장 다닐 때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다. 소득이 줄었는데 소비 습관을 바꾸지 못한다면 통장 잔액은 금방 바닥나고 만다.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소득이 줄어들면 그에 맞춰 씀씀이도 줄여야 하지만 한번 높아진 소비 수준은 낮아지기 힘들고 식구들 저항도 커서 생각처럼 쉽지 않다”면서 “은퇴가 임박했다면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덜 쓰고 불편하게 살면서 짐을 줄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대국 일본에서 한때 ‘버리는 즐거움’을 의미하는 ‘단샤리(斷捨離)’ 문화가 유행한 것도 실은 고령화와 연관이 있다. 예습하듯 은퇴 전에 현재 생활비보다 적은 예산으로 생활하는 시도를 하면 좋다.
2️⃣건강을 망치는 나쁜 생활 습관
나이가 들면 돋보기, 보청기, 틀니, 지팡이, 약봉지가 일상이 된다. 아프면 서럽다지만, 더 큰 문제는 질병에 따른 삶의 질 저하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닥치면 더 심각하다. 특히 간병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사비로 충당해야 하는데, 최근 인건비 상승으로 월 300만~400만원이 드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한 일본에서도 병원 신세를 지는 노인들이 의료와 요양에 노후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간병 파산’ 위험에 직면했다.
노후엔 건강을 잘 지키기만 해도 흑자 인생을 보낼 수 있다. 건강이 곧 돈이기 때문이다. 음주, 야식, 흡연, 과식, 소파와 한몸 등 같은 나쁜 생활 습관은 건강을 해치며 노후 파산의 원인이 된다. 잊기 쉽지만 치아 관리도 힘써야 한다. 치아가 부실하면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식욕 저하로 만성적 영양 불량 상태에 빠지기 쉽다.
3️⃣말년 위협하는 ‘묻지 마 자녀 지원’
노년기에도 노부모 간병, 자녀 지원, 배우자 병환 등 예상치 못한 목돈 지출이 생기기 쉽다. 이런 돌발 상황에 대비하려면 저축 통장이 필요하다. ‘잔액이 바닥나면 일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건강이 나빠져 예전처럼 돈을 벌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내가 버는 돈은 미래에 내가 쓸 돈이라고 생각하고 모아야 한다.
나중에 퇴직금을 받을 테니 저축은 필요 없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퇴직금을 목돈으로 받아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유혹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나이 들어 투자에 실패하면 젊을 때처럼 재기하기가 어렵다. ‘힘들게 번 퇴직금, 놀리지 마세요’라고 접근하는 사람은 100%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황혼기에 무조건적 자녀 지원은 독(毒)이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다고 해서 말년에 계속 퍼 주면 내 노후가 먼저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