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할 땐 언제 받을까 까마득했는데 벌써 받을 때가 되었다니 세월 참 빠르네요.” “보험사에서 연락이 와서 연금 수령액을 확인했는데, 두 배로 부을 걸 후회되더군요.”

신입사원 시절부터 성실히 연금을 쌓아왔다면, 55세가 되는 해에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금융회사에서 ‘연금 받을 나이가 됐으니, 연금 지급 개시 절차를 밟으세요’라고 알려오는 것이다. 현역 시절에 허리띠 졸라 매면서 편안한 노후를 준비해 왔던 가입자들은 이제 연금을 어떻게 받으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연금을 최대한 유리하게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금 수령의 제1법칙은 내가 가입 중인 연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수십 년 돈을 불입했어도 어떤 상품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 연금은 55세 이후에 일단 한 번 수령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조건 변경이나 취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사 결정 전에 잘 따져봐야 한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10명 중 9명은 보험사 연금 가입

올해 연금 지급 개시 연락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험사 연금 가입자들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개인연금에서 보험사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7%(321조원)에 달한다.

왜 이렇게 보험사 연금 비중이 높은 걸까. 금융권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 고금리 시절에 보험사들이 확정금리형 연금 상품을 많이 판매했는데, 금리가 연 7~8%에 달해 인기가 좋았다”면서 “오래 전에 가입한 연금 상품들은 금리가 높은 데다 장수축하금·여행자금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돈도 많이 주기 때문에 현재까지 계약이 유지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만약 당시 고금리가 적용되는 보험사 연금에 가입했고 중간에 깨지 않고 지금까지 들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선택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연금을 내 노후 생활에 맞춰 손해 없이 수령하는 것이다.

보험개발원이 30~75세 가구주 1300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더니, 개인연금에 가입 중인 사람은 10명 중 5명꼴이었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세제 혜택 적용 시점에 따라 구분

보험사 연금은 세제 혜택 적용 시점에 따라 연금저축보험과 연금보험으로 나뉜다. 정부는 스스로 연금에 가입해서 노후 준비를 하려는 국민에게 절세 혜택(납입액의 13.2~16.5% 세액 공제)을 준다.

연금 축적기에 국세청 연말정산으로 세금을 돌려받은 적이 있다면 연금저축보험(세제적격)이고, 세금을 돌려받은 적이 없다면 연금보험(세제비적격)이다. 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정부가 주는 절세 혜택을 연금을 쌓고 있을 때 받았으면 연금저축보험이고, 나중에 돈을 인출할 때 절세 혜택을 받는다면 연금보험이다.

연금저축보험은 매년 납입액에 대해 연말정산을 해서 세금(13.2~16.5% 세액공제)을 돌려 받는다. 하지만 늙어서 연금을 받을 때는 연금소득세(3.3~5.5%)를 내야 한다. 또 인출액이 연간 1200만원(2024년부터 1500만원으로 상향)을 넘으면 금액 전체가 종합소득세(최대 49.5%) 신고 대상이 된다. 종소세 부담을 피하려면 연금저축보험은 10~20년으로 길게 나눠서 받아야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연금보험은 노후에 전액 비과세

연금보험은 가입 기간 중엔 이렇다 할 절세 혜택이 없다. 하지만 나중에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면 진가를 발휘한다. 연금이 얼마 나오든, 10년 이상 유지했다면 늙어서 따로 내야 할 세금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2013년 2월 이전 가입 기준).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으로 잡히지도 않는다.

2013년 2월 이전 가입 기준으로 10년 이상 유지하면 보험 차익(납입 보험료에 대한 이익)에 대해 세금이 한 푼도 붙지 않아서 보통 ‘비과세 연금보험’이라고 부른다. 금융당국 통계로 보면, 보험사의 연금 가입자들은 대부분 비과세 연금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2021년 기준 209조원에 달한다.

비과세 연금보험 중에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건이 좋아서 ‘전설의 보험’이라고 불리는 상품들이 많다. 당시 인기 상품 중엔 확정금리 7.5%로 운용되는 연금보험이 있었는데, 이 상품은 55세에 연금 개시를 신청하고 그대로 놔두면 1%포인트가 더해져 8.5% 금리로 불어난다. 일부 보험사에선 옛날 연금을 일시금으로 받거나 10년 확정형으로 선택해서 짧고 굵게 타라고 권할 수도 있는데, 80~90세 시점에 생존연금 등으로 수백만원씩 주는 상품도 많기 때문에 보험사 말만 믿지 말고 꼭 약관을 살펴 보자.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60세男, 종신형 손익분기점은 88세

내가 가입한 연금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이제 연금 수령 방식을 골라야 한다. 보험사 연금 수령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국민연금처럼 죽을 때까지 평생 받는 ①종신형과 정해진 기간(10~20년)만 받는 ②확정형이 대표적이다. 보험회사에 따라서는 상속형, 집중형, 부부형, 체증형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예비 은퇴자 커뮤니티에는 보험사 연금보험을 어떻게 받아야 가장 유리하냐는 질문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노후 준비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황명하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내가 가진 전체 연금으로 노후 생활비를 얼마나 충당할 수 있을지 예상 시나리오를 그려봐야 한다”면서 “퇴직 후 국민연금이 나오는 65세까지의 소득 공백기를 연금으로 버틸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이어 “은퇴 초기엔 생활비가 많이 들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소비가 줄어든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늙어서 받는 연금은 내 돈이 아닐 수 있는데, 혹시 모를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겠다고 말년에 연금을 많이 받도록 세팅한다면 후회할 수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이명열 한화생명 T&D팀 투자전문가는 “연금 수령 방식을 정할 때는 기대여명(평균생존기간)을 따져봐야 하는데, 55세의 기대수명은 평균 30년에 달한다”면서 “종신형은 오래 살수록 유리하고 확정형은 단기간에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등 장단점이 뚜렷하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종신형과 확정형은 월 수령액 차이가 상당하다. 가령 지난 1996년에 보험사에서 가입한 비과세 연금보험을 55세부터 수령한다면, 종신형(10년 보증)은 월 51만원인 데 반해 확정형(10년 만기)은 월 95만원이다.

만약 종신형으로 선택했는데 1년 만에 갑자기 사망하면 못 받은 연금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종신형은 10년 보증, 20년 보증 등 지급 보증 기간이 붙어 있다. 연금 지급 개시 후 1년 만에 사망해도 보증 기간에 받아야 할 연금은 유가족이 받을 수 있다.

차경수 연금전문가는 “확정형은 종신형보다 연금액이 많기 때문에 ‘쓸 수 있을 때 제대로 쓰자’면서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연금 재원이 작으면 종신형은 월 수령액이 작겠지만 평균 수명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종신형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55세부터 연금을 지급하는 '세제적격 개인연금저축(구개인연금)' 제도는 지난 1994년 6월 처음 도입됐다./조선일보DB

그런데 연금을 종신형 방식으로 선택한다면, 대략 몇 살까지 살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까? 현재 60세인 남성이 1억원짜리 연금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남성이 종신형(12년 보증)을 선택하면 월 40만6000원, 20년 확정형으로는 월 53만4000원을 받을 수 있다. 투자 수익률 3%로 계산해 보면, 20년 후인 80세 시점에는 20년 확정형으로 받은 금액이 1억7200만원이나 되어 종신형에 비해 4100만원 정도 많다.

하지만 이 남성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88세가 되는 시점부터는 종신형 수령액이 확정형을 앞지르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는 장수할수록 종신형 선택자가 연금 수령액 측면에선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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