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전 10만원과 퇴직 이후 10만원, 똑같은 돈인데 스트레스 크기는 다르네요.”(60대 은퇴자 A씨)
직장 다닐 때는 매달 월급이 들어오니까 노후 위기감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퇴직 이후 월급이 끊기면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현실에 눈뜨게 된다. 똑같은 은퇴자 신분이라고 해도 연금액에 따라 삶의 질은 극과 극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연금격차(年金格差)라는 단어가 일상 용어처럼 쓰일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어디일까. 30일 보험개발원이 2022년 국민연금 통계연보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자 중에서 1959년생 돼지띠 남성들의 월 평균 수령액이 81만6000원으로 가장 많았다. 47년 돼지띠 선배들(41만원)과 비교하면 두 배 많고 전체 가입자들 평균(58만원)보다도 40% 많다. 2위는 58년 개띠 남성들로, 월 평균 수령액은 76만8000원이었다.
올해 59년 돼지띠들의 월 평균 연금액은 부양가족이나 감액 등의 변수가 없다면 86만원 정도일 것이다. 작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면서 올해 국민연금이 5.1% 증액됐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고물가로 인해 연금액이 늘어나게 되는데, 정확한 수치는 내년 1월에 나오지만 대략 3.6% 정도 증액될 전망이다. 그러면 59년 돼지띠의 평균 연금액은 월 90만원에 육박한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지난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 제도가 점점 성숙하면서 가입 기간이 길고 납부 보험료가 많은 수급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58~62세의 연금 수령액은 정상수급 연령에 받는 연금액보다 적은데, 조기연금에 해당되어 감액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기연금은 국민연금 수령 나이보다 최대 5년 일찍 수령하는 것으로, 1년 앞당겨 받을 때마다 연금액이 6%씩 줄어든다. 최대 5년 앞당겨 받을 수 있는데, 이때 연금액은 30% 감액된다.
✅소득대체율 피크 시기에 근무
1959년 돼지띠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이끈 산업 역군들이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59년 출생아 수는 98만명이다.
59년생의 연금액이 가장 많은 건 왜일까. 김동엽 미래에셋 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국민연금을 많이 받으려면 가입 기간이 길어야 하는데, 59년 돼지띠들은 20대 후반에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됐다”면서 “이 세대는 연금 가입 기간이 30년 정도로 긴 데다 소득대체율이 70%였던 시기와 근무 기간도 겹치기 때문에 다른 연령대에 비해 연금액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대체율이란, 보험료를 40년 동안 납입했다고 가정하고 이 기간 평균 소득 대비 노후에 받는 연금액 비율을 의미한다<표 참고>. 가령 소득대체율 50%는 월 100만원을 벌던 사람이 국민연금으로 월 50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소득대체율이 높을수록 연금액은 많아진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지난 1988년부터 10년 동안 70%였지만, 기금 고갈 우려가 커지자 정부가 계속 낮춰 2023년엔 42.5%까지 떨어졌다. 이후에도 매년 0.5%포인트씩 감소해 2028년엔 40%가 된다<아래표 참고>.
✅月 200만원 연금부자, 1년새 4배
‘월 200만원 국민연금 고액 수급자 1년새 4배로, 20년 이상 가입자 월 평균액 100만원 첫 돌파, 부부 합산 월 300만원 이상 수급자 1000쌍 돌파...’
연금 지갑이 두둑한 59년생 돼지띠들이 수급자 대열에 진입하면서 올해 국민연금에선 각종 신기록이 쏟아졌다. 국민연금으로 월 200만원 이상 받는 은퇴자들이 급증한 것이 대표적이다. 월 200만원 이상 국민연금 수급자는 지난 8월 기준으로 1만6982명에 달했다. 1년 전인 2022년 8월만 해도 4217명이었는데, 1년새 4배로 늘어난 것이다.
국민연금으로 매달 200만원 넘게 받으면 은퇴 생활에는 제법 보탬이 된다. 200만원은 중년층이 예상하는 1인 기준 적정 노후 생활비(월 177만원, 2021년 기준)를 훌쩍 넘는다.
현장에서 연금 컨설팅을 하는 은퇴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기업에서 장기 근속하고 퇴직하는 직장인들 중에서 국민연금으로 월 200만원 넘게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조재영 웰스에듀 부사장은 “강제적이긴 했지만 현역 시절에 국민연금을 많이 낸 사람이 퇴직 후에 연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엔 국민연금으로 월 400만원 이상 받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맞벌이 부부 문의도 많다”고 말했다.
✅日 최고재판소 “연금 감액은 합헌”
국민연금의 연령대별 연금액 추이를 보면, 한국인들의 노후 준비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9년 돼지띠 남성들이 내년에 받을 예상 연금액 월 90만원은 아직은 부족해 보이지만, 앞으로 계속 늘어날 테니 걱정 없다. 경제·사회 상황이 어떻든 연금액은 물가에 연동되어 증액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유럽 등 선진국 은퇴자들은 ‘연금 감액’을 걱정한다. 연금 재정 안정화를 목표로 정부가 도입한 ‘자동 안정화 장치(Built-in Stabilizer)’ 때문이다. 자동 안정화 장치란, 출산율이나 기대수명 같은 주요 변수에 따라 보험료율, 연금액, 소득대체율 등을 국가가 자동으로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 재정 불안정 요인을 덜어내기 위해 OECD 회원국의 70%는 다양한 형태의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이들 나라보다 인구 구조가 나쁘고 연금 수지 불균형도 심각한데 제도 도입과 관련해 본격적인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연금 제도를 배워 온 일본은 현역 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지난 2004년 자동 안정화 장치(매크로 경제 슬라이드) 도입 등을 담은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경제 상황이 나쁘면 자동 안정화 장치가 발동되고 이에 따라 연금액을 조정하게 된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2021년부터 2년 연속 은퇴자들의 연금을 깎았다.
당연히 연금 수급자들은 불만일 수밖에 없다. 전국 39개 지역에서 연금 감액 관련 위헌 소송이 제기됐는데, 지난 15일 첫 판결이 나왔다. 일본 최고 사법기관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헌법재판소)는 이날 효고현(兵庫県) 수급자 95명이 국가를 대상으로 낸 소송에서 ‘연금 감액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최고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연금 제도는 세대간 공평을 꾀해야 하며, 연금 감액은 재정 기반의 악화를 막고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하지 않다”면서 “최저한의 생활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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