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포스코, 금융지주사 등 오너 대주주가 없는 ‘소유 분산 기업’에서 기존 최고경영자들의 ‘셀프 연임’이 잇따라 무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시장의 관심이 또 다른 소유 분산 기업인 KT&G로 향하고 있다. KT&G 백복인 사장이 오는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4연임에 도전하는 걸 두고 잡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백 사장은 KT&G 민영화 이후인 2015년 10월 취임해 2018년, 2021년 연임했다.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지난달 말 시작된 KT&G의 차기 사장 선임 과정의 ‘룰(규칙)’이 불공정하다며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KT&G는 최근 금융지주나 KT, 포스코 등 소유 분산 기업 CEO가 우호적 이사회를 발판 삼아 장기 집권하는 관행에 비판 여론이 일자, 지난달 ‘현직 사장 우선 심사제’ 등을 없애고 외부 후보 공모를 받는 등 절차를 손질했다. 하지만 FCP는 ‘보여주기식’이라고 보고 있다.

개인 주주들도 날 선 반응이다. KT&G 온라인 주식 토론방에선 “재임 중 주가를 폭락시킨 수장이 4연임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 글이 넘쳐난다. 백 사장 취임 때 주당 10만9000원대였던 KT&G 주가는 현재 17%가량 하락한 9만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오히려 28% 올랐다.

그래픽=박상훈

◇행동주의 펀드의 ‘셀프 연임’ 저격

행동주의 펀드 FCP는 KT&G 차기 사장 선임 절차가 백 사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보고 있다. FCP는 지난달 1일 주주서한에서 “상식, 공정, 투명성이 모두 결여됐다”고 비판한 데 이어, 지난 3일엔 공개 입장문을 통해 현재 사장 선임 절차를 “말장난 밀실 투표”라고 했다.

KT&G 공고에 따르면 사장 선임은 3단계로 진행된다. 오는 10일 사장 후보 공개 모집 기한이 끝나면 지배구조위원회가 후보를 추리고, 사장후보추천위가 심층 면접 등을 거쳐 최종 후보를 고른 뒤 주주총회에서 의결한다. 이에 대해 FCP 이상현 대표는 “지배구조위와 사장후보추천위는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백 사장 재임 시절 선임된 사외이사 100%로 채워진 동일 집단”이라며 “언어유희로 주주와 사회를 현혹한다는 점에서 매우 질이 나쁘다”고 했다. 2단계 심사에서 외부 자문단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그러면서 “현직 사장을 밀어주기 위한 속 보이는 불공정 선임 과정에 어느 인재가 들러리를 감수하고 지원하겠느냐”며 어떤 사장 후보라도 공평하게 대우받는 절차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FCP는 또 백 사장 연임에 뚜렷한 명분이 없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백 사장 재임 기간 영업이익이 2016년 1조4688억원에서 2022년 1조2676억원으로 감소한 것을 들어 경영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추정한 KT&G의 작년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1조1692억원으로 더 적다. FCP 이 대표는 “장기 집권 같은 후진적 지배 구조만 개선돼도 현재 8만9000원대로 만성 저평가된 KT&G 주가가 14만원으로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국민연금에 쏠리는 눈

업계 관심은 국민연금에 쏠리고 있다. 앞서 KT 구현모 전 대표와 포스코 최정우 회장의 ‘셀프 연임’이 실패한 데엔 국민연금 반대가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FCP는 국민연금을 향해 “KT&G 사장 선정 과정에 KT, 포스코 대비 특혜를 주지 말라”며 “교통경찰이 누구에겐 호루라기를 불고 누구는 눈감아주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다. 작년 6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KT&G 주식 6.31%를 보유한 대주주 중 하나다. 최대 주주로 올라선 기업은행의 입장도 주목된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절차상 문제를 들어 백 사장 연임에 반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셀프 연임’ 논란에 대해 임민규 KT&G 이사회 의장은 3일 입장문을 내고 “더욱 공정한 자격 심사를 위해 인선 자문단의 의견을 반영할 것”이라며 “일련의 과정을 주주들과 투명하게 소통하며 투명하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