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분기(7~9월) 가계의 여윳돈이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4일 한국은행은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작년 3분기 순자금 운용액이 전분기보다 2조1000억원 줄어든 26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21년 3분기의 20조3000억원 이후 2년 만에 최저치다.
순자금 운용액은 여윳돈을 가리키는 말로 예금이나 보험, 연금, 펀드, 주식 등으로 굴린 돈을 나타내는 자금 운용액에서 빌린 돈인 자금 조달액을 뺀 값이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의 여윳돈이 줄어든 것은 집을 사기 위해 자금을 썼기 때문이다. 송재창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완화된 대출 규제에 따른 주택매매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가계의 여유 자금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대출자 10명 중 6명은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대출을 중도 상환했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는 연구소가 만 20~64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다.
고금리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가계의 여윳돈이 줄어들자 대출을 줄이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2∼3년 전만 해도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서 투자)’처럼 대출 레버리징을 통한 자산 증식이 성행했으나 올해는 투자보다 대출 상환을 먼저 고려하는 디레버리징 의향이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대출 보유율은 49.2%로 2022년(50.4%)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평균 대출 잔액은 4287만원에서 4617만원으로 7.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대출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짐에 따라 자산가층을 중심으로 대출이 진행됐거나, 대출 금리가 오르며 상환이 어려워지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 가계 저축 여력의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분석도 함께 나왔다. 연구소가 가구 소득에서 고정·변동 지출과 보험료, 대출 상환액을 제외하고 남은 금액을 저축 가능액으로 보고 가계 재정을 분석한 결과다.
연구소에 따르면, 저축 여력이 중간 수준인(30∼50%) 소비자 비중은 2022년 29.9%에서 2023년 24.4%로 5.5%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소득의 절반 이상이 남아 저축 여력이 높은 소비자는 28.1%로 2022년(25.1%)보다 3.0%포인트 늘었다. 저축 여력이 낮은(0%∼30% 미만) 소비자도 같은 기간 32.3%에서 34.9%로 2.6%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