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 넘어 문득 주변 친구들을 둘러봤더니, 다들 경제적 부를 이루고 여유 있어 보입니다. 통장에 1억원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은퇴할 나이가 되니 부족한 듯 느껴지네요.”(50대 회사원 박 부장)

100세 인생에서 반환점을 돈 50대가 되면, 노후 준비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고민하게 된다. 우리 집은 잘 준비하고 있는 걸까. 지금 얼마나 모아 놨어야 내 또래에서 평균일까.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우리나라 50대의 통장 현실을 살펴봤다.

그래픽=김하경

✅순자산 1등은 50대 자영업자

50대는 우리나라 연령대별 인구 비율 중 1위다. 작년 말 기준 약 87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1971년까지 한 해 출생아가 100만명이 넘었는데,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50대로 진입하면서 다른 연령대를 압도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의 두툼한 ‘경제 허리’가 된 50대의 평균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은 약 5억원이다. 작년 3월 말 기준인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인데, 집값 하락 여파로 1년 전보다는 순자산 금액이 약간 줄었다. 그래도 50대의 순자산 규모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1위였다. 직업별로 보면, 50대 자영업자의 순자산이 5억4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50대 임시·일용 근로자의 순자산은 2억원에 그쳤다.

✅50대 자산의 76%는 부동산

은행 빚을 다 뺀 순자산 5억원은 큰돈일까 아닐까.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사기도 어려운 금액이니 큰돈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결혼해서 자녀 교육까지 다 시키면서 모으기엔 힘든 금액이라는 의견 등 다양하다.

50대가 자산 증식에 활용한 주요 수단은 부동산이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50대 자산의 76%는 아파트·주택·상가·오피스텔·회원권 등과 같은 실물 자산으로 구성돼 있다. 아파트를 분양받고 평수를 넓히면서 중산층이 된 50대 가정일수록 부동산 의존도가 높았다.

부동산 위주의 재무 구조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와서 현금이 잘 도는 현역 시절엔 큰 위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은퇴 이후 월급이 끊기고 나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 통장을 헐어 쓰면 잔고는 곧 바닥나고 자산 감소는 가속화된다.

은퇴 전문가들은 노년기 자산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금 흐름’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도 급히 돈이 필요할 때가 생기는데, 소득이 없으면 은행에서 돈 빌리기도 어렵다. 부동산이 있다고 해도 급하게 매도하면 제값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금융자산·부동산은 5·5 전략

1억1232만원. 우리나라 50대의 통장에 들어있는 평균 저축액이다. 저축액이란 현금은 물론, 예·적금, 펀드, 주식, 채권, 보험 등 금융자산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평균 저축액(8548만원)보다는 30% 정도 많았다. 하지만 은퇴가 코앞에 닥친 연령대이고 순자산이 5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50대의 금융자산은 순자산의 22% 정도이기 때문이다.

황명하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위원은 “은퇴를 앞두고 부동산 비율을 일시에 줄이긴 어렵겠지만, 노년기 금융자산 비율은 50% 정도가 되는 것이 적절하고 최소 30%는 넘어야 노후 파산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면서 “50대 평균 순자산 5억원을 기준으로 ‘은퇴 전까지 최소 1억5000만원 이상 저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라”고 조언했다.

최범규 골든트리투자자문 FA운영본부장은 “50대는 40대까지 열심히 살아온 삶을 안전하고 행복한 60대로 잘 연결해야 하는 징검다리 구간”이라며 “한번 힘이 작용하면 관성에 의해 60대까지 유지되고 나아가 노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초기에 토대를 제대로 쌓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