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이후 세계 정세는 낙관적이지 않다.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세상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 문제를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가 관건인데, 각국 중앙은행과 정치인들에겐 매우 풀기 힘든 난제다. 결국 각국 정부는 차입을 늘려가며 돈을 뿌리는 손쉬운 해결책을 선택할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일본 경제 잡지 프레지던트 최신판(2월 2일자) 기고문에서 밝힌 세계 경제 전망이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고수로 불리는 로저스 회장은 지난 1973년 퀀텀펀드를 운용해 4200%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작년 말 방한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뉴스1

로저스 회장은 기고문에서 “돈을 풀면 일시적인 문제 해결은 가능하겠지만, 뒤이어 큰 고통이 뒤따르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점점 쇠퇴하고, 2025~27년 무렵에는 전세계에 불행해진 국민들이 넘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사상 큰 위기는 작은 나라나 기업의 파탄에서 시작하곤 했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별일 아니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 위기가 터졌죠. 저도 경제 위기가 언제 일어날 것인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 경제 위기는 생애 최악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2008년 리먼 쇼크 이후 글로벌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로저스 회장 지적처럼, 전세계 부채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지난해 367조달러(약 49경원)로 사상 최대였는데, 신기록 경신은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정부 부채 비율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올해 미국·영국 등 전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진행되는데, 후보들이 재정 지출을 늘리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서다. 각국 재정적자가 위험한 수준까지 늘어나면 글로벌 증시엔 부담이 된다.

로저스 회장은 이어 “실제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의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게 된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좌 잔고가 줄어들면 누구라도 패닉에 빠져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런 불안정한 마음이 계좌 손해를 더 키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로저스 회장은 현재 본인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그는 “글로벌 인플레가 재가속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주식의 시대가 저물 것에 대비한 선제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험 대피(헷지) 목적에서 자산의 5~10%를 원자재에 투자하세요. 원자재는 원유·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옥수수·대두 같은 곡물 등을 말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원자재가 유망한 자산이라고 생각해 투자하고 있습니다. 지난 66~74년에 설탕 투자로 큰 돈을 벌었는데, 당시 설탕 선물가격이 1.4센트에서 66센트로 급등했었죠.”

로저스 회장은 원자재 중에서도 은(銀)을 탑픽으로 꼽았다. 금은 이미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수준에서 거래되는 데 반해 은은 사상최고치의 60% 수준까지 하락해 있다는 것이다. 로저스 회장은 “은은 산업 용도나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므로, 갖고 있어도 큰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라며 “금이나 은은 증시 위험에 대비하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상 주식과 원자재는 역(逆)의 상관 관계를 보인다. 지난 1970년대에는 원자재 시장이 과열이었고 주식 시장은 부진했다. 로저스 회장은 “당시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 상태여서 원자재값이 꾸준한 상승세였다”고 했다.

“설탕 가격만 오른 게 아닙니다. 옥수수 선물 가격이 295% 치솟았고 석유도 15배 올랐습니다. 금이나 은도 10년간 20배 이상 용수철처럼 튀었습니다. 주식의 시대는 원자재 시장이 꺾인 다음에 찾아왔습니다.”

주식 투자의 정석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로저스 회장은 ‘대중에게 권하지는 않지만’ 수년 전부터 우즈베키스탄 관련 펀드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 아시아에 있는 구소련 국가로, 한때 독재 정치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은 지도층이 바뀌고 변신 중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은 금, 우라늄, 천연가스, 원유 등 천연 자원이 많고, 관광 자원 역시 풍부하다.

전세계에서 증시 흐름이 가장 부진한 중국 투자와 관련해서도 조언이 있었다. 로저스 회장은 “가격이 급락했을 때가 가장 좋은 매수 타이밍이긴 하지만, 중국은 언제 경기가 회복될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점이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이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라면서도 “거대한 거품이 깨지고 난 후에 제자리를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